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임진왜란과 호남사람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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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4년 7월 15일, 안종덕의 상소는 신의(信義)로 이어진다.

“지금 폐하께서는 신의를 좋아하지만 주변의 신하들은 속이는 것이 버릇이 되었고 중앙과 지방에서는 유언비어가 떼지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애통조서(哀痛詔書)를 여러 번 내렸으나 온 나라가 감격하는 효과가 없고, 엄격한 칙서(勅書)를 자주 내렸으나 탐관오리들이 조심하는 기미가 없습니다. 이것이 무엇 때문이겠습니까?

신은 폐하의 신의가 백성들에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의가 없으면 사람의 도리가 서지 못하고 신의가 없으면 하늘의 도리가 시행되지 않습니다. 신의가 없으면 제 몸도 수행할 수 없으며 신의가 없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공자는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릴지언정 신의는 버리지 않으려고 하였습니다.”

“군대를 버리고 식량을 버릴지언정 신의는 버리지 않는다”는 말은 논어 ‘안연 편’의 공자와 자공의 대화에서 나온다.

자공: 정치란 무엇입니까?

공자: “식량을 풍족히 하고, 군사를 넉넉히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하는 것이다.”

자공: “부득이해서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이 세 가지 중에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군대를 버려라”

자공: “나머지 두 가지 중에 부득이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 “식량을 버려라. 백성들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는 존립하지 못한다(民無信不立).”

신뢰는 정치의 기본이다.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 정당이나 정치인은 무너지기 마련이다.

안종덕의 상소는 이어진다.

“가만히 보건대, 폐하께서는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서 말을 가지고 하지 마음으로 하지 않는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 있습니다.

폐하의 일에는 무슨 일이나 신의가 별로 없습니다. 조서나 칙서를 내릴 때마다 신의를 다짐하지 않은 적이 없었지만, 하나도 제대로 실천되는 일이 없습니다.

대궐을 깨끗하게 만든다고 말하지만 잡된 무리들이 더 들어오고, 잡세(雜稅)를 폐지한다고 말하지만 부패한 관리들이 소환되었다가는 곧바로 석방됩니다.

부패를 척결한다고 말하지만 관청이 부패관리를 보고하면 덮어두고 내려보내지 않으며, 백성들의 고통을 보살핀다고 하지만 대책을 올리면 아예 덮어둡니다.

대신(장관)이나 협판(차관)을 장기짝 옮겨 놓듯 교체하고, 관찰사나 군수는 여관 집 드나들 듯 교체됩니다.

직제(職制)는 어제 변경시켰는데 오늘 또 고치고, 법률은 중한 쪽으로 쏠렸다가 경한 쪽으로 기울어집니다. 이래 가지고야 조정의 명령이 어떻게 신의를 보이겠습니까?

더구나 관직 제도는 너무나 복잡합니다. 탁지부가 있는 이상 내장원은 왜 두며, 군부(軍部)가 있는데 원수부(元帥府)는 왜 만들었는지요?

외부(外部)가 있는데 예식원(禮式院)은 또 무엇 때문에 설치하며, 경무청이 있는데 경위원(警衛院)은 왜 또 둡니까? 법부가 있는데 군법원(軍法院)에 권한을 나눠준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한 번은 나누었다가 한 번은 합하고, 한 번은 없앴다가 한 번은 두는 일은 모두 법을 문란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법이 문란하면 백성들이 믿지 않게 되고 백성들이 믿지 않으면 명령이 시행되지 않고, 명령이 시행되지 않으면 일이 제대로 되지 않고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결국 나라가 망할 것입니다. 이것은 폐하의 마음에 신의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안종덕은 고종 스스로가 신의가 부족하다고 질타한다. 안종덕은 죽을 각오가 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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