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상욱 역사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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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탄탄은 정도를 당당하게 걸어간다는 뜻으로 역경의 10번째 괘인 천택리괘(天澤履卦) 구이효의 효사이다. 탄탄대로라는 말은 여기에서 유래됐다. 감옥에 갇혔다고 반드시 죄인은 아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경우도 있고, 실정법을 위반했지만 소크라테스처럼 악법에 걸렸을 수도 있다. 다른 사람 대신에 감옥에 들어갈 수도 있다. 어떤 경우로 감옥에 갇혔든지 정도를 지키면 비난을 면할 수도 있다.

인심은 일정치 않아서 무척 미워하다가도 막상 형벌을 받게 되면 동정심이 생기기도 한다. 역사상 많은 사람들이 천명을 다하지 못했지만, 당당하게 최후를 맞이했던 사람은 언젠가 재평가된다. 깡패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들이 대중들로부터 인기를 끄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분명히 사회를 어지럽히는 범죄인들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두목에게 충성을 다하고 친구와의 의리를 지킨다고 생각해 은근히 갈채를 보낸다.

이러한 현상은 겉으로는 지성인인 체하면서 뒤로는 못된 짓을 하는 사람들과 엄청나게 위대한 사람인줄 알았더니 치사한 인간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반작용일 뿐이다. 깡패가 범죄인이라는 사실을 대중들이 모를 리가 있겠는가? 그러한 사람들이 갈채 이면에는 지도층에 대한 실망과 사회에 대한 절망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한 정도가 아니다. 당당함의 진수는 겉과 속이 일치된 당당함이다. 당당함을 갖춘 예란 대학의 핵심인 성의(誠意)가 바탕이다. 성의의 내용은 4가지이다.

첫째는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毋自欺)이다. 사람은 자신도 속인다. 앞길이 탄탄대로일 것이라 생각해야 희망도 있고 재미도 있다. 희망은 생명의 원동력이다. 그러나 거기에 도취될 수는 있어도 자신을 만족시켜주지는 않는다. 현실적으로 사람들은 날마다 자신을 배신한다. 성(誠)은 말(言)을 이룬다(成)는 뜻이다. 제3자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는 것도 어렵지만 정말 어려운 것은 스스로와의 약속이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어겨도 그만이다. 그러나 자신만은 안다. 스스로에게 약속한 것을 지키려는 노력이 곧 성실이다.

둘째는 호오(好惡)이다. 좋고 싫음, 옳고 그름이 분명해야 한다. 좋고 옳아도 이해관계가 걸리거나 나태하면 행하지 않고, 싫고 나빠도 이득이 되면 마지못해 뛰어든다. 의식이 엎치락뒤치락하니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지 못한다. 고요함으로 먼 곳에 이르고(寧靜以致遠), 깨끗함으로 뜻을 밝히는(淡泊以明志) 경지에 이르러야 탐진치(貪嗔癡)의 속박에서 벗어나 생각의 중심이 잡히고, 행동거지가 당당해 어떠한 경우라고 흔들림이 없다.

셋째는 자겸(自謙)이다. 스스로에게 겸손하려면 의식이 청명하고 진솔해야한다. 그렇지 못하다고 자각했다면 끊임없는 자기성찰을 통해 청명하고 진솔한 의식으로 돌아가야 한다. 겸손은 자신에 대한 비하나 소극적인 사고를 의미하지 않는다. 주역의 64괘 가운데 15번째인 지산겸괘(地山謙卦)는 겸손의 도를 설파한다. 강인하고 유능하지만 자신을 낮추어야 흉악한 경우를 만나지 않는다. 자신감이 있지만 드러내지 않으니 자만이나 교만이 아니요, 유능하지만 보통 사람에게 기회를 양보하니 무능하거나 소극적이지 않다.

넷째는 신독(愼獨)이다. 남회근은 황제내경의 독오(獨悟), 독견(獨見), 독명(獨明)을 통한 식신(識神)의 경지야말로 신독의 묘체(妙諦)라고 했다. 독오란 조악하고 천박한 의식이 정지된 후에 나타나는 지혜이므로 귀로 들을 수는 없지만 마음이 열려서 삼라만상의 소리를 듣는 경지를 가리키며, 독견이란 깊은 명상의 상태에서 자의식이 사라진 후에 도달하는 청정함으로 시공을 초월한 심안으로 우주에서 쿼크까지 바라 볼 수 있는 상태를 가리킨다. 독명이란 신체의 감각마저 사라진 상태에서 마치 선계로 날아가는 듯한 상태를 가리킨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경지이니 스스로 수련을 통해 체험하는 수밖에 없다. 보통 사람들은 한가할 때나 혼자 있을 때 조심하는 것이나 잘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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