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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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엄마에게 의사가 되길 강요받으며 9년간 의대 입시에 매달리다 간호사가 된 30대 딸이 감시와 무시를 견디다 못해 흉기를 휘둘러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이 발생했다.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딸은 “포로 같았던 엄마와 생활보다 감옥 생활이 더 편하다”라고 했다. 엄마가 주변에 “딸이 의대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하고 “의대에 가야 한다”며 압박하는 바람에 무려 9년 동안 의대 입시에 매달렸다고 하니 그 고충이 짐작이 간다. 대학을 나오지 않은 엄마가 학벌 콤플렉스를 가져 자식으로 대리만족을 얻으려다 벌어진 비극적인 사건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0여년 전 엄마의 성적 압박에 못 견딘 고3 학생이 모친을 살해하고 8개월간 시신을 숨긴 사건이 있었다. 이 학생의 엄마는 ‘전국 1등’을 요구하며 성적이 떨어지면 밥을 주지 않거나 며칠씩 잠을 못 자게 했다고 한다. 골프채로 수년간 맞아왔던데다 엄마의 기대와 압박을 견디기 힘들어 범행을 저질렀다. 자식이 부모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소유물이나 부모의 욕심을 채우는 도구로 생각한 탓에 벌어진 사건이다.

어떤 경우든 부모를 살해하는 행위는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패륜 행위다. 하지만 부모의 잘못된 양육으로 자식이 패륜아가 됐다면 부모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식의 행복은 아랑곳하지 않고 부모의 욕심을 위해 자식을 소모품처럼 취급했기 때문이다. 아이를 부모와 동등한 인격체로 대하고 아이가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이가 행복한 일이 무엇인지 살피며 키웠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각자가 지닌 소질과 능력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무조건 1등만을, 무조건 의사만을 고집한 결과 불행한 결론에 이르고 말았다.

‘개구쟁이라도 좋다.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광고가 유행했던 적이 있다. 아이를 처음 낳았을 때, 아이가 자라면서 아플 때, 부모라면 특히 공감하는 광고다. 그런 시기가 지나면 대부분 부모가 초심을 잃고 아이를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난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정도로 사랑스러웠던 자식임을 생각하면 아이에게 학대 수준으로 공부를 강요하지 못한다. 자식의 성공을 위해 공부를 강요했다는 변명도 말이 안 된다. 그런 과정을 겪어 공부로 성공해 좋은 대학을 간들, 의사가 된들 그 아이는 부모에게 가장 사랑받으며 행복해야 할 시기를 최악의 고통 속에 보낸 트라우마에 평생 시달리며 불행한 삶을 살 가능성이 크다.

부모는 자식이 성인이 되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고 건강하게 자라도록 보살피는 존재여야 한다. 자식이 부모를 원망하고 살해할 정도까지 변했다면 부모의 자격이 없다. 차라리 아이를 세상에 데려오지 않는 게 낫다. 세상에 데려왔으면 행복하게 살도록 가정환경을 가꿔야 한다. 부모의 틀에 가둬놓고 정해진 룰 대로만 살라고 강요하는 건 우리 안에 가둬 키우는 동물하고 다를 바 없다.

미국이나 영국 등의 교육에 비해 우리나라 교육은 분명 처음부터 방향을 잘못 잡았다. 오바마가 아무리 대한민국 교육을 치켜세운들 그 교육을 받는 학생들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잘못된 교육방식이다. 공부를 재미있게 느껴야 하는데 어릴 적부터 사교육 뺑뺑이를 시키니 공부에 흥미를 일찍 잃어버린다. 부모가 공부를 출세의 수단으로만 생각하기 때문이다. 강요하는 공부가 아닌 스스로 재미있게 공부해야 창의적인 인재로 성장한다.

공부를 해 본 부모는 공부도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잘한다는 걸 안다. 공부해보지 않은 부모는 무조건 학원을 보내고 사교육을 시키면 공부를 잘하는 줄 안다. 노력이 부족해서 공부를 못하는 줄만 알고 공부를 강요하니 소질과 능력이 달리는 아이는 결국 부모에게 반항하게 된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야!”라는 말은 그저 부모의 이기적인 말이다. 엄마들끼리 자식을 자신들의 자존심 싸움에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부모의 이기심으로 아이의 소질과 능력을 무시하고 닦달하고 있지 않나 돌아봐야 한다.

많은 부모가 자신의 소원이라며 아이의 꿈을 꺾고 부모의 꿈과 희망을 억지로 주입하는 우를 범한다. 부모의 꿈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건 가장 최악의 양육이다. 요즘 아이들은 아이다운 꿈과 희망이 사라져 “장래희망이 공무원”이라고 대답한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 아이가 가진 소질을 제대로 파악해 사랑으로 키워야 가족이 모두 행복하다. ‘신이 자식을 준 이유는 너도 뜻대로 안 되는 게 한가지는 있다’라는 스카이캐슬 드라마 명대사를 항상 가슴에 새기고 자식을 돌봐야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소유물도 아니고 부모의 뜻대로 길러져서도 안 되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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