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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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를 바라보는 국민의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때맞춰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본격 도입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최근 개최한 원격의료 관련 세미나에서 참석자들은 한목소리로 대부분의 나라가 원격의료 상용화에 나선 상황이어서 지금 우리가 시행해도 늦었다며 우려를 표했다.

실제 전경련이 지난해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원격의료 도입을 긍정적으로 보는 의견이 62.1%로 부정적 의견(18.1%)보다 세 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이처럼 대다수 국민은 원격의료 시행을 원하고 있지만 의료계의 반대로 매번 불발됐다. 20대 국회에서는 관련 법안이 회기 만료로 폐기됐고, 21대 국회 들어서는 의료법 개정안이 발의조차 되지 않았다.

원격의료의 시행은 전 세계적인 흐름이다. 미국은 원격의료 동등법을 통해 원격의료와 외래 진료에 동일한 보험 수가를 적용하도록 유도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로는 화상 진료로 초진도 가능할 뿐 아니라 이메일과 문자로 하는 의료 상담에도 수가를 지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에서 원격의료가 외래 진료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코로나19 사태 이전 0.1%에서 지난해 4월 기준 14%까지 늘어났다. 중국, 싱가포르, 호주는 코로나19 사태 이전부터 정부에서 원격의료를 지원했다.

세계 원격의료 시장은 매년 급성장하고 있다. 세계 시장 규모는 2018년 343억 달러에서 2026년 1857억 달러로의 성장이 전망된다. 시장 규모는 북미, 유럽, 아시아·태평양, 라틴아메리카, 중동·아프리카 순으로 크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정보통신(ICT) 강국이다. 우리 기업은 외국 정부와 계약을 맺고 원격의료 서비스를 시행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원격의료 기술 수준은 높지만 법과 제도에 막혀 국내에서는 사업 기회조차 얻지 못하고 해외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로 의료계, 산업계, 시민사회의 찬반격론에 부딪혀 수년째 논의 단계에 머물던 원격의료가 우리나라에서도 감염병 예방을 명목으로 ‘비대면 진료’라는 이름으로 한시적으로 시행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위기상황에서 의료진과의 화상·전화 상담으로 진료를 받고 치료제를 처방받을 수 있고, 심지어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일부 의료계에서는 초진 환자까지 비대면 진료가 허용된 것에 대해 우려하면서 불법이란 시각도 있지만 비대면 진료경험과 실적이 점점 축적되고 있다. 코로나19 감염 위험 등으로 병원 방문이 어려워진 만성질환자뿐만 아니라 일반인도 편의성 때문에 비대면 진료를 활용하는 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의료계에서도 최근 들어 일부 의료인들이 비대면 진료를 전향적으로 검토해보자는 의견을 내기도 한다.

감염병 대응 차원에서 원격의료의 한시적 허용을 통해 안정성과 필요성을 검증한 만큼 이제는 원격의료의 전격적인 시행을 늦출 수 없다. 더 늦기 전에 원격의료 관련 규제를 손질해야 한다. 의료계를 설득해서 의료시스템 전면 개선이 불가능하다면 적용 가능한 부분부터 서서히 확대해 나가야 한다. 다만 코로나19로 한시적으로 시행한 비대면 진료의 장점과 단점을 심도 있게 분석해서 보완하거나 개선하는 노력은 필요하다. 또한 원격의료에 사용되는 서비스와 제품에 대한 적절한 인허가 제도를 도입해 의료인과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장치를 구축해야 한다. 원격의료 시행으로 인한 불이익을 받는 의료인에 대한 지원책도 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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