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출처: 뉴시스)

레이건 이후 40년만에 ‘제노사이드’ 용어 사용… 터키 “근거없고 강력 거부”

아르메니아 “진실 회복 강력 조처” 환영… 美는 “터키 비난 목적 아니다” 진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4일(현지시간) 터키 전신인 오스만제국의 아르메니아인 학살을 ‘집단학살(genocide)’로 공식 인정했다.

아르메니아는 환영과 감사의 뜻을 밝혔지만, 터키는 미국이 이 논란을 정치화하려 한다며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까지 나서서 강력 반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우리는 오스만제국 시대에 아르메니아인 집단학살로 숨진 모든 이들의 삶을 기억한다”며 “미국 국민은 106년 전 오늘 시작된 집단학살로 목숨을 잃은 모든 아르메니아인을 기리고 있다”고 밝혔다.

미 대통령은 4월 24일 아르메니아 집단학살 추모일에 성명을 내왔지만, 이번 성명의 경우 집단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라는 표현을 두 번이나 쓴 것이 달라진 점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아르메니아계 미국인의 요구를 수용해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이 사건을 집단학살이라고 언급한 마지막 미국 대통령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이었다.

이후 터키의 압력으로 인해 이 표현을 쓰지 않았지만 바이든 대통령이 40년 만에 이 단어를 다시 꺼낸 것이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재임 시 “20세기 최악의 참사 중 하나”,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세기 최악의 집단 잔혹 행위의 하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대부분 역사가는 1915년부터 1923년까지 터키의 전신 오스만제국이 아르메니아인과 다른 소수민족을 상대로 집단학살을 자행했다고 인정한다. 이 사건으로 150만명 정도가 사망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러나 터키는 ‘1915년 사건’이라는 모호한 용어를 사용하고 전쟁 중 벌어진 쌍방 충돌의 결과라며 집단학살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숨진 아르메니아인 규모도 30만명 정도라고 주장한다.

이를 반영하듯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역사학자들이 다뤄야 할 논쟁”이라며 “제삼자가 정치화하거나 터키에 대한 간섭의 도구로 이용하는 것은 누구에게도 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터키 외무부는 성명을 내고 “미국 대통령의 성명을 강력히 거부하고 비판한다”며 “학문적·법적 근거가 없고 어떤 증거로도 뒷받침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하다”고 비판했다.

또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는 미국의 발언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미국 대통령은 특정 정치 세력을 만족시키는 것 외 아무런 목적도 없는 이 중대한 실수를 바로잡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반면 니콜 파쉬냔 아르메니아 총리는 이번 성명이 “국제관계에서 인권의 우월성을 재확인하는 것”이라며 “공정하고 관대한 국제사회를 함께 건설하려는 모든 이들에게 고무적인 사례”라고 환영했다.

또 “진실과 역사적 정의의 회복을 향한 강력한 조처이자 집단학살 희생자의 자손에 대한 귀중한 지원”이라면서 감사의 뜻을 표시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터키의 반발을 예상한 듯 전날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과 취임 후 석 달여 만의 첫 통화에서 집단학살로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미리 전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성명에서도 “우리는 비난을 던지기 위해서가 아니라, 일어난 일이 절대 되풀이되지 않도록 보장하기 위해 이 일을 한다”고 말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미 당국자는 터키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중요한 동맹이라고 표현하면서 이번 성명의 의도가 터키 비난에 있지 않다고 강조하는 등 이번 일로 터키와 관계가 악화해선 안 된다는 뜻을 밝혔다.

이 당국자는 바이든 대통령이 원칙적인 방식으로 인권의 가치에 초점을 맞춰서 낸 성명이지, 비난을 포함해 그 이상의 어떤 이유도 있지 않다고 말했다.

(워싱턴·이스탄불=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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