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은 2014년 1월 24일 그간 HWPL의 평화운동에 대한 진정성을 증명하는 평화실화를 만들었다. 제8차 평화순방으로 필리핀 민다나오섬을 방문한 이만희 대표와 HWPL 평화사절단은 민간으로서는 이뤄내기 어려운 극적인 평화협정을 이끌어냈다. 40년 분쟁으로 평화를 갈망했던 주민들의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앞서 2012년 10월 필리핀 정부와 원주민 무슬림 사이에는 방사모로협정이 맺어졌지만 민간 저변에 평화문화가 빨리 자리잡지 않으면 언제든 무산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1976년 평화협정이 불협화음으로 불발된 전례가 있었기에, 주민들은 또다시 정부와 군에 의해 맺어진 평화협정에 대한 신뢰가 두텁지 못했다. 이 상황에서 HWPL이 민간 평화협정 이후에도 민다나오에 보여준 평화교육과 평화문화활동 등 지속가능한 평화를 위한 노력이 돋보인다. 본지는 HWPL의 민다니오 민간 평화협정 과정과 이후를 정리해봤다.

이만희 HWPL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필리핀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주둔지 내에서 2016년 1월 24일 열린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에서 두 번째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막식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이만희 HWPL 대표의 중재로 이뤄진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필리핀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의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주둔지 내에서 2016년 1월 24일 열린 ‘HWPL 평화기념비 제막식’에서 두 번째 기념비가 모습을 드러냈다. 제막식 참석자들이 환호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한국인 이만희 평화실화 스페셜<3-2>

‘변화의 땅’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그 후

이슬람무장단체 주둔지 등 민다나오 두 곳에 HWPL 기념비

협정 후 민다나오 가톨릭-이슬람 주민 총 버리고 함께 대화

HWPL 활동이 평화교재로… 필리핀 교육부와 평화교육 MOA

[천지일보=송태복 기자] “민다나오 지역이 매우 커서 이만희 대표의 평화협정 이후 하루아침에 평화가 정착된 것은 아니지만 민다나오에 매우 빠르게 평화가 정착되고 있습니다.”

2014년 9월 18일 ‘평화 만국회의’ 취재 현장에서 만난 필리핀 PTV 엘리자베스 카친 기자가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14년 1월 24일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이만희 대표에 의해 기적처럼 이뤄진 민간 평화협정 현장을 보도했던 기자다.

2016년 1월 24일 열린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 기념 행사에서 알 하즈 무라드 이브라힘 모로민족해방전선(MILF) 대표가 이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 HWPL)ⓒ천지일보 2021.4.15
2016년 1월 24일 열린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 기념 행사에서 알 하즈 무라드 이브라힘 모로민족해방전선(MILF) 대표가 이 대표에게 감사패를 전달하고 있다. (제공: HWPL)ⓒ천지일보 2021.4.15

당시 한국인 평화운동가 하늘문화세계평화광복(HWPL) 이만희 대표를 통해 40여년 유혈분쟁에 마침표를 찍을 평화협정이 이뤄졌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수많은 국내 언론은 이를 믿지 못했다. 특히 민다나오 현지 상황을 잘 아는 기자일수록 불가능한 일이라고만 여겼다.

하지만 현지에서 이만희 대표의 평화협정을 보도하고 현지 상황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한 기자의 말은 달랐다. 카친 기자는 이만희 대표가 이룬 평화협정 이후 민다나오의 가톨릭-이슬람 주민들은 평화를 얘기하면서 함께 걷는 기적을 보고 있다고 했다. 아직 이 소식을 접하지 못한 민다나오 주민들에 의해 일부 지역에서 갈등이 발생하고는 있지만 그들도 곧 평화협정 소식을 접하면 ‘민다나오 평화정착’이 현실화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만희 대표와 정치인들은 달랐다”면서 “이역만리에서 오직 평화를 위해 찾아온 한국인 평화운동가의 진정성이 40년 분쟁에 지친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말했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이 지역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민다나오 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이 지역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민다나오 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평화유지를 위한 HWPL의 노력

민다나오 평화협정 이후에도 HWPL은 민다나오 현지의 평화정착을 위한 노력을 지속했다. 민다나오 평화협정 체결 6개월여가 지난 2014년 8월 11일 민다나오 주민 1만 2000명이 잠보앙가시에서 열린 전쟁종식과 세계평화를 위한 평화걷기대회에 참여했다.

잠보앙가시는 2013년 9월 이슬람단체인 MNLF(모로민족해방전선)와 정부군과의 충돌로 민간인 12명을 포함해 138명의 사망자가 나오는 등 이슬람-가톨릭 종교 분쟁이 빈번하게 발생했던 곳이다. 이곳에서 이슬람-가톨릭 주민들이 함께 평화걷기대회를 진행한다는 것 자체가 이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걷기대회 이후 이만희 대표는 이사벨라 잠보앙가 시장, 눌버트 사하리 따위따위주 주지사 등 정부 인사, 펜다툼 라하 밧자오 원주민 대표, 민간단체 대표, 각 종단 대표와 함께 전쟁을 끝내고 영구적 평화를 이루겠다는 평화협약식을 진행했다.

2020년 2월 7일 필리핀 코타바토시 광장에서 열린 민다나오 HWPL 평화의 날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2020년 2월 7일 필리핀 코타바토시 광장에서 열린 민다나오 HWPL 평화의 날 5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시민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민다나오에 세워진 HWPL 평화기념비

2015년 5월 25일 민다나오 주 정부는 이만희 대표의 평화업적을 기리기 위한 ‘HWPL 평화기념비’를 세웠다. 이날 행사에는 정부와 반군을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과 지역 대표들이 대거 참석해 민다나오의 평화 유지와 발전에 힘쓸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이 이뤄진 1월 24일을 ‘HWPL DAY’로 지정하고 ‘전쟁에서 평화로 해방된 날’ 기념행사를 진행했다. 이날 가톨릭-이슬람 지도자들은 ‘하나님과 세계 만민 앞에서 다시는 종교분쟁을 하지 않을 것’과 ‘HWPL과 평화의 사자가 될 것’을 약속했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기념해 민다나오 다바오시에 건립된 HWPL 평화박물관에서 2016년 1월 26일 ‘Peace Hall’을 마련해 HWPL의 민다나오 평화활동에 대한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을 기념해 민다나오 다바오시에 건립된 HWPL 평화박물관에서 2016년 1월 26일 ‘Peace Hall’을 마련해 HWPL의 민다나오 평화활동에 대한 특별 전시가 열리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2016년 1월 24일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2주년을 맞아 민다나오 이슬람 무장투쟁을 이끌어 온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주둔지인 민다나오 술탄 쿠다랏에도 ‘HWPL 평화기념비’가 세워졌다. 민다나오 평화가 HWPL을 통해 이뤄졌음을 대외적으로 공식화한 것이다. 평화기념비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 MILF 주둔지를 찾은 이만희 대표 일행은 민다나오 주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끝없이 이어진 환영인파는 민다나오 주민들의 ‘평화’를 향한 간절함을 대변했다.

앞서 2015년 9월 알 하즈 무라드 이브라힘 MILF 대표는 HWPL이 주최한 만국회의 1주년 기념식에 참석했다. 이브라임 대표는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18년간이나 정부군과 협상을 해오고 있었지만 타결을 못한 상태였다. 2014년 1월 이만희 대표가 민다나오에서 이룬 이슬람-가톨릭 지도자 간 민간 평화협정은 MILF와 필리핀 정부가 공식 협정을 이루는 데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 많은 사람이 이를 믿지 못하지만 사실”이라고 말했다.

2018년 5월 25일 제4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일을 맞아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시와 코타바토시에서 평화걷기대회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행사 무대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2018년 5월 25일 제4주년 세계평화선언 기념일을 맞아 필리핀 민다나오 다바오시와 코타바토시에서 평화걷기대회가 진행된 가운데 참석자들이 기념행사 무대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평화정착으로 이어진 민간 평화협정

2014년 1월 24일 이만희 대표에 의한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소식을 접한 정부군과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측은 바로 다음날인 1월 25일 예비평화협정서의 마지막 부속 문서에 최종 합의했다. 합의내용은 18년간 진행한 양측의 협상과정 중 가장 큰 진전으로 평가됐다. 이에 기초해 그해 5월 필리핀 의회에서 민다나오의 이슬람자치구를 인정하는 이른바 방사모로기본법이 입법 절차에 돌입했다. 2018년 8월 두테르테 대통령이 방사모로기본법에 최종 서명하면서 민다나오 내전은 사실상 종식됐다. 한국인 평화운동가에 의한 민다나오 평화협정이후 4년 6개월여만이었다.

방사모로기본법이 통과된 지 두 달여가 지난 2018년 10월 7일 SBS 일요다큐멘터리는 ‘평화, 멀지만 가야할 길’을 통해 민간 평화협정 이후 평화로워진 민다나오 현지 모습을 전했다. “총이 평화를 가져다주는 줄 알았다”던 현지인들은 ‘총’을 버리고 적으로 여겼던 이웃의 집을 자연스럽게 드나들면서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평화로운 일상에 적응하고 있었다. 화면 중간중간 현지인들의 교류 확대와 평화교육을 위해 애쓰는 HWPL 봉사단과 HWPL 평화기념비 모습도 비쳤다.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민다나오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민다나오 코타바토시 지역에서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중등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민다나오 민간 평화협정 이후 민다나오에서는 HWPL의 평화교육이 자리잡게 됐다. 민다나오 코타바토시 지역에서 HWPL 평화교재로 수업을 듣고 있는 중등학교 학생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지구촌 평화의 산실이 된 민다나오

민다나오 평화협정 이후 HWPL 평화운동은 필리핀 전역으로 확산됐다. 필리핀의 수많은 초중교 학교가 HWPL 평화행보를 산 교재로 평화교육을 받는 HWPL 평화학교로 지정됐다. 또 민다나오 내에 평화박물관이 건립된 것을 비롯해 종교간 대화의 장이 활성화되고, 필리핀 국가교육부와 HWPL은 평화교육 MOA를 체결했다.

민다나오의 오랜 분쟁은 주민들의 일상을 빼앗고 교육의 기회를 박탈했다. 되찾은 평화는 민다나오 주민들에게 잃었던 모든 것을 빠르게 되돌려 줬고, 그 중심에 HWPL이 함께했다.

“민다나오에 평화가 오면 세계평화가 온다”고 할 만큼 삶보다 죽음이 더 가까웠던 땅 민다나오는 오랜 아픔을 딛고 이제 지구촌 평화의 산실로 거듭나고 있다.

84세의 나이로 이역만리 분쟁지역에 오직 평화를 위해 찾았던 이만희 대표는 이후 수많은 평화상을 수상했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 진짜 상(賞)은 평화”라고 밝힌 바 있다. 자신의 평화운동 정착지는 ‘북한’이라고 밝힌 이 평화운동가가 한반도에서도 민다나오와 같은 평화역사를 이룰 날을 고대한다.

 

2019년 2월 25일 ‘평화를 위한 자원봉사자들(VIP)’ 주최로 필리핀 마닐라불라칸 경기장에서 열린 필리핀 평화대축제에서 이 대표(가운데 흰색 정장)와 평화사절단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2019년 2월 25일 ‘평화를 위한 자원봉사자들(VIP)’ 주최로 필리핀 마닐라불라칸 경기장에서 열린 필리핀 평화대축제에서 이 대표(가운데 흰색 정장)와 평화사절단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제공: HWPL) ⓒ천지일보 202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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