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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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국민작가 시바 료타로(司馬遼太郞, 1923~1996)는 1964년 도쿄올림픽을 전후해 1962년 6월부터 1966년 5월까지 일본의 대표적인 보수신문 ‘산케이 신문’에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 1835~1867)를 주인공으로 한 대하소설 ‘료마가 간다’를 장기 연재했다. 이 소설은 그 이전까지만 해도 잘 알려지지 않은 무명의 무사를 일본 역사의 최고 인물로 만드는데 결정적으로 기여했을 뿐 아니라 시바 료타로를 단숨에 베스트셀러 작가로 올려놓았다. 소설 작품을 통해 한 인물이 국민의 역사적 영웅으로 자리잡은 것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다. ‘료마가 간다’의 대성공 이후 일본 공영방송 NHK는 2010년 48부작 대하드라마 ‘료마전’을 방영해 매회 20% 안팎의 시청률을 기록, ‘료마 열풍’을 다시 일으키기도 했다.

일본 최고의 정론지 ‘아사히 신문’이 수년 전 독자 여론조사에서 일본 역사 1천년동안 역사 인물 인기순위 투표를 한 결과 사카모토 료마는 일본의 통일의 기틀을 마련한 전국시대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1534~1582)와 통일을 완성한 에도막부 초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1542~1616)를 물리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했다. 일본 IT산업에서 경영의 귀재로 유명한 재일동포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은 미국 유학생활동안 외로울 때면 밤마다 ‘료마가 간다’를 읽고 희망과 용기를 얻었다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는 서양 세력이 밀려들며 에도막부가 혼란과 분열상을 보이던 무렵, 일본의 변방에 속한 시코쿠섬 도사현의 하급무사의 아들로 태어나 출신 성분의 한계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일본 역사에 보기 드문 독창력과 놀라운 행동력으로 메이지 유신의 기틀을 마련하고 자객에 의해 교토의 한 여관에서 33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풍운아였다. 그는 서로 대립 관계에 있던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사쓰마-조슈동맹’ 및 막부와 번의 통일을 성사시킴으로써, 메이지유신을 통해 중앙집권적인 근대국가로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사카모토 료마 이후 일본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을만한 영웅이 지난주 ‘명인열전’인 마스터스 골프 토너먼트에서 탄생했다. 그 이름은 29세의 마쓰야마 히데키(松山英樹)이다. 그는 85년의 마스터스 역사에서 최초의 일본인이자 동양인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그린 재킷’의 주인공이 됐다. 수줍은 많은 그는 자신이 영웅으로 불리게 된 것에 대해 준비가 되지 않았던 듯 보이지만 일본 역사에서 오랜만에 세계적인 인물로 떠오르게 됐다.

오랫동안 일본인들에게 마스터스 우승은 간절한 꿈이었다. 서양 엘리트들의 스포츠이자 세계적인 기업들이 스폰서를 맡는 골프 종목에서의 성공을 일본의 세계적인 위상을 올려줄 수 있는 기회로 여겼기 때문이다. 특히 최고의 메이저 대회로 꼽히는 마스터스 우승은 더욱 매력적인 것이었다. 일본은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골프 인구와 골프장을 갖고 있는 골프 대국이지만 마스터스 등 메이저골프대회에서 단 한명의 우승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그는 사카모토 료마와 같은 시코쿠 섬, 에히메현 마쓰야마라는 작은 도시에서 아마추어 골퍼였던 아버지에게 이끌려 4살때부터 골프를 시작했다. 현재 골프연습장을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가 그의 골프사부였다. 마치 타이거 우즈가 아버지에 의해 5살 때 골프를 시작한 것처럼 말이다. 마쓰야마는 1997년 우즈의 마스터스 우승을 보면서 자신도 언젠가 그 자리에 서서 ‘그린 재킷’을 입고 말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사카모토 료마와 마쓰야마 히데키는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해 강한 의지와 실천력을 보여줬다는 점에서는 일맥 상통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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