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4일 블랙데이… 짜장면 먹는 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14
4월 14일 블랙데이… 짜장면 먹는 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14

 

4월 14일 블랙데이… 짜장면 먹는 날?

졸업식 풍경 중 하나에서 대중음식으로

산둥 지방 작장면에서 한국 짜장면으로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해마다 2월 14일은 밸런타인데이, 3월 14일은 화이트데이라고 해서 서로 초콜릿과 사탕을 주고받는 날이 있다. 상술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이날 초콜릿도 사탕도 못 받은 사람들이 4월 14일이면 먹는 음식이 있다. 바로 짜장면이다. 누가 이날을 ‘블랙데이(Black Day)’로 만들어 짜장면을 먹게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재미있는 발상이다.

지금이야 언제 어디서든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사실 몇십 년 전만 해도 짜장면은 특별한 날에만 먹던 음식이었다. 더욱이 1970~80년대만 하더라도 밖에서 음식을 사 먹는 것이 흔한 일이 아니었기에, 특별 메뉴 중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짜장면이 외식 음식 1, 2위를 다투었다. 그래서인지 졸업식 날이면 학교 앞 인근 중국요리집은 사람들로 붐볐다. 그날은 졸업을 축하하며 온 가족이 모처럼 짜장면이라는 별식(別食)을 먹는 날이기도 했다.

우리의 삶에 함께하면서 한때는 졸업식 풍경의 하나로, 지금은 ‘블랙데이’에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있는 짜장면. 지금도 어린아이들이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 녀석은 정말 자기 홍보에 탁월한 존재다. 올해도 다가오는 4월 14일, 어딘가에서 홀로 혹은 여럿이 짜장면을 먹고 있을 이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짜장면은 우리의 삶에 함께하면서 한때는 졸업식 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다. ⓒ천지일보 2021.4.1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짜장면은 우리의 삶에 함께하면서 한때는 졸업식 풍경의 하나로 자리 잡기도 했다. ⓒ천지일보 2021.4.14

짜장면, 혹시 이중국적?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햄릿은 삶과 죽음 사이에서 처절한 고뇌를 한 반면, 다수의 사람들은 중국 음식을 먹을 때면 짜장면과 짬뽕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하곤 한다. 볶음밥이나 간짜장, 울면 등 다른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짜장면과 짬뽕을 놓고 고민이 깊어지는 것은 이 둘이 중국요리를 대표하는 음식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아이러니한 것은 정작 중국에는 우리가 ‘짜장면’이라고 부르는 음식은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중국에도 짜장면 정확히는 ‘작장면(炸醬麵, 자장미엔)’이라 불리는 중국 동북주(북경 인근)의 가정 요리와 산둥 지방의 요리가 있다.

요리법에서 차이를 보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작장면의 ‘작(炸)’은 기름을 흠뻑 두른 냄비에 튀기듯 볶는다는 뜻이며 ‘장(醬)’은 간장, 된장 할 때의 장을 말한다. 즉 작장면은 검은빛을 띤 중국의 춘장(春醬)을 채소와 함께 기름에 볶아 소스를 만들어 면과 비벼서 먹는 음식이다. 보통 짠 물을 이용하기 때문에 짠 편이며, 우리가 즐겨 먹는 짜장면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다.

정리하자면 중국의 작장면은 중국 음식, 우리의 입맛에 맞게 재탄생한 한국식 짜장면은 한국 음식인 것이다. 고로 우리가 알고 있고, 먹고 있는 짜장면의 국적은 한국이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지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은 1890년대 중국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노동자 쿨리(苦力)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에서 시작됐다. ⓒ천지일보 2021.4.1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지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은 1890년대 중국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노동자 쿨리(苦力)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에서 시작됐다. ⓒ천지일보 2021.4.14

화교의 역사와 함께하다

1882년 일어난 임오군란을 틈타 청나라 군대가 조선으로 들어오게 되는데 이때 지리적으로 조선과 가까운 산둥성(山東省)에서 군대와 함께 그 지역의 상인들도 조선에 유입된다. 이듬해인 1883년 통상조약이 체결되면서 화교 유입의 길이 열렸고 인천공원 인근 북성동 일대에 화교 거주지가 형성되는데 이곳을 청관거리(현 차이나타운), 이들이 만든 고급음식을 ‘청요리’라고 불렀다.

이들은 산둥 지역의 가정식이었던 작장면을 1890년대 인천항의 중국인 부두 노동자들에게 팔게 됐는데 이것을 짜장면의 시초로 본다. 즉 지금 한국인의 입맛에 맞는 짜장면은 1890년대 중국 산둥 지방에서 건너온 부두 노동자 쿨리(苦力)들이 인천항 부둣가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춘장에 국수를 비벼 먹던 음식에서 시작된 것이다.

1907년에는 중국 산둥에서 인천으로 이주한 화교 우희광(1886~1949)이 청관거리에 ‘산동회관(山東會館)’을 열고 청국에서 이주한 상인들에게 숙식을 제공했으며, 이때 길거리에서 팔던 짜장면을 정식 메뉴로 팔기 시작했다. 산동회관은 1912년경 상호를 공화춘(共和春)으로 변경했는데, 이는 1912년 1월 1일에 공식적으로 공화정을 표방한 중화민국이 탄생하자 조국에 “공화국의 봄이 왔다”는 뜻을 담은 것으로 전해진다.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인천광역시 중구청에서 옛 공화춘 건물과 대지를 매입한 뒤 보수 공사를 시작해 지난 2012년 4월 28일 ‘짜장면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천지일보 2021.4.14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인천광역시 중구청에서 옛 공화춘 건물과 대지를 매입한 뒤 보수 공사를 시작해 지난 2012년 4월 28일 ‘짜장면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천지일보 2021.4.14

고급 중화요리점으로 경인지방에서 명성이 높았던 공화춘은 6.25전쟁 중 영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으나, 휴전 후 우희광의 장남 우홍장이 공화춘의 주식을 인수하고 1968년경 인접 건물을 매입해 대형 연회장을 갖추면서 1970년대까지 경인지방 5대 중화요리점의 하나로 그 명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1980년대 들어 한국인들이 본격적으로 중화요리업에 진출하고 차이나타운 일대의 인천 구도심 상권이 쇠락하면서 경영이 어려워져 1983년 문을 닫는다. 이후 2002년 한 한국인이 ‘공화춘’이라는 이름으로 상표등록을 하고 옛 공화춘이 있던 건물 근처에 자리를 잡아 영업하고 있다. 원조 공화춘의 후손은 신승반점이라는 이름으로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영업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인천광역시 중구청에서 옛 공화춘 건물과 대지를 매입한 뒤 보수 공사를 시작해 지난 2012년 4월 28일 ‘짜장면박물관’으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는 점이다. 이곳 박물관에서는 짜장면과 공화춘의 역사를 엿볼 수 있으며, 당시 짜장면에 얽힌 시대상과 문화를 읽을 수 있어 둘러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직도 이삿날이면 ‘약방에 감초’처럼 자연스럽게 시켜 먹게 되는 짜장면. 그렇게 짜장면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면서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아직도 이삿날이면 ‘약방에 감초’처럼 자연스럽게 시켜 먹게 되는 짜장면. 그렇게 짜장면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면서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14
아직도 이삿날이면 ‘약방에 감초’처럼 자연스럽게 시켜 먹게 되는 짜장면. 그렇게 짜장면은 1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의 삶과 함께하면서 하나의 음식문화로 자리 잡게 됐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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