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은훤 행복플러스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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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워하는 사람과 미움 받는 사람, 누가 더 불행할까? 사실은 둘 다 불행할 수밖에 없지만 더 불행한 것은 미워하는 사람인 듯하다.

1903년에 세계 최초의 동력비행기를 제작해 짧은 비행이지만 성공시킨 라이트 형제가 있다. 라이트 형제는 우리가 알고 있는 위버와 오빌 이외에도 장남인 로이힐린, 차남인 로린, 누이동생인 캐서린까지 5남매가 모두 비행기 만드는 일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들은 바람의 영향을 가장 적게 받는 곳을 찾아 헤맨 끝에 노스캐롤라이나 주의 키티호크를 거점으로 연구를 했다. 3년여의 연구 끝에 1903년 12월 17일 글라이더 조종사이자 비행기 연구가인 옥타브 사뉘트를 포함한 전문가 5명이 보는 가운데 라이트 형제가 탄 플아이어1호는 하늘로 날아올라 12초 동안의 짧은 비행에 성공했다.

동력비행에 성공했다는 소식에 미국 과학계는 축하보다 시샘과 분노의 반응을 보이게 되는데 그 중 한 사람은 라이트 형제가 직접 찾아가 가르침까지 구했던 새뮤얼 랭글리 박사였다. 그는 라이트 형제가 비행을 성공시킨 9일 전인 1903년 12월 8일에 시험비행에 나섰다가 추락을 했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었던 랭글리 박사는 1904년 7월 라이트 형제와 시범대결을 하게 된다.

2만명이 넘은 사람들 앞에서 벌어졌던 이 비행대결은 라이트 형제의 완승으로 끝났다. 라이트 형제가 탄 비행기는 15분이나 400미터 위를 날아갔기 때문이다. 결국 랭글리는 패배에 좌절해 모든 활동을 멈추고 폐인처럼 지냈으며, 평생 라이트 형제를 원수로 여기며 살다가 오래지 않아 화병으로 죽게 된다. 그럼에도 랭글리의 패배를 인정하지 못한 그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스미소니언 과학협회는 라이트 형제가 자신들의 스승인 랭글리 박사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정계, 재계, 학계 등을 통해 비판하고 소송까지 이어나갔다. 물론 라이트 형제는 이로 인해 1년 이상 온갖 조사와 수사를 받아야 했다.

라이트 형제는 고국이었던 미국에서는 환영받지 못했기에 미국에서 글렌 커티스라는 사람이 비슷한 기술로 뒤늦게 특허를 낸 후에 공장을 차리고, 라이트 형제가 자신의 기술을 도용했다고 온갖 소송과 선동을 했다. 미국에서는 계속 글렌 커티스의 편을 들어주며 라이트 형제는 커티스를 괴롭힌 가해자가 돼 사면초가에 몰리게 되자 오빌은 미국을 떠났다.

프랑스 및 독일, 영국, 네덜란드와 아르헨티나를 오가면서 적극적으로 비행기 홍보를 했다. 1928년 미국으로 돌아온 오빌은 자신들을 곤경에 빠뜨렸던 커티스가 사업실패로 부도에 빠지자, 그간 모아온 돈으로 커티스의 생산공장을 인수해서 ‘커티스-라이트’라고 이름 붙이게 된다.

가끔 있는 돈 없는 돈 다 모아서 빌려줬는데 떼이고 속상해하다가 지병까지 얻게 되는 경우를 가끔 본다. 사람들은 왜 불공평하게 착한 사람들만 더 힘드냐고 이야기를 한다. 이것이 바로 ‘미움의 보복’이 아닐까 생각한다. 빌려주질 말든지 빌려줬으면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 돈도 잃고 미움의 보복까지 당하게 된다면 두 배, 아니 그 이상 억울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움이 생길 때에는 미움이 생기기 전 고마웠던 일을 생각하고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 고마웠던 것에 집중해야 한다. 그랬을 때 ‘미움의 보복’의 반대라고 할 수 있는 ‘사랑의 행운’의 주인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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