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진욱 초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21일 오후 정부과천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던 중 안경을 만지고 있다. ⓒ천지일보 2021.1.2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천지일보 2021.1.21

“기소 공수처가 결정하게 해 달라” 요구에 검찰 “근거 없다”

이 검사와 차규근 본부장 기소 뒤 오후 7시 37분 사후 통보

검찰 실력행사에 공수처도 기각요청 등 실력행사 받아칠 수도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와 검찰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검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의혹 사건 관련 이규원 검사와 차규근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을 전격적으로 불구속기소 하자 통보가 늦었다며 공수처가 반발하는 등 연일 힘겨루기를 펼치고 있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차관 출금 사건을 수사하는 수원지검은 지난 1일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을 직권남용 등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

앞서 공수처는 이 검사와 차 본부장 사건을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기소 여부는 본인들이 결정하겠다고 한 바 있다. 검찰이 사실상 공수처 의견을 무시한 채 기소 결정을 한 셈이다.

이에 대해 김진욱 공수처장은 전날인 2일 “(기소 사실을) 기사를 보고 알았다”며 불만을 드러냈다.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처장은 출근길에 취재진에 검찰이 이첩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처리와 관련해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이 4일 오전 정부과천청사 공수처로 출근하며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 처장은 출근길에 취재진에 검찰이 이첩한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불법 출국금지 사건 처리와 관련해 "기록을 검토한 뒤 다음 주에 결론을 내리겠다"고 말했다. (출처: 연합뉴스)

하지만 수원지검은 ‘기소 직후 공문을 공수처에 보내 공소사실을 통보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그러나 공수처는 다시 한번 입장을 내고 “일과 시간이 지난 1일 오후 7시 37분께 통보가 왔다”며 “공문을 2일에야 확인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이 김 처장이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시간에 통보를 했다는 것이다. 김 처장이 기사를 통해 확인했다고 언급한 것도 출근길 일성이었다.

두 조직의 갈등은 이 사건 처리 과정 내내 반복되는 상황이다. 앞서 해당 의혹 피의자인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관련 사건을 검찰이 공수처로 이첩했으나, 공수처가 지난 12일 이를 다시 검찰에 재이첩하면서 ‘수사만 하고 기소는 다시 공수처에 송치해 공수처가 결정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요구하면서도 갈등이 있었다.

공수처의 요구에 이 사건 담당자 이정섭 수원지검 형사3부장검사는 검찰 내부망에 “공수처장께서 사건을 재이첩하면서 ‘수사 완료 후 공수처가 기소 여부를 판단할 수 있도록 사건을 송치하라’고 수사지휘성 문구를 떡하니 기재해 놓았다”며 “이후 쏟아지는 질문에 수습이 되지 않으니 ‘사건을 이첩한 것이 아니라 수사 권한만 이첩한 것’이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망측한 논리를 내세웠다”고 비판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검찰이 11일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를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재판에 넘긴다. 양 전 대법원장은 전·현직을 통틀어 처음으로 사법부 수장이 피고인으로 법정에 서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뿐만 아니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등도 함께 기소될 전망이다. 이로써 8개월간의 사법농단 의혹 수사가 일단락 지어질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이날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 ⓒ천지일보 2019.2.11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서울 서초구 중앙지방검찰청에서 검찰 깃발이 나부끼는 모습. ⓒ천지일보 DB

이 지검장과의 김 처장의 면담 사실이 알려진 지난 16일에도 검찰은 공수처가 조사내용을 기록한 조서 등을 제출하지 않았다고 했고, 공수처는 애초에 조서 대신 수사보고서 등을 제출한 것이라고 반박하는 등 서로 다른 주장을 펼쳤다.

공수처가 마련하려는 사건사무규칙 내용이 일부 언론에 보도된 것을 두고도 김 처장이 “밝힌 적이 없다”며 “검찰에서 나온 건가”라고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런 반목이 쌓이고 쌓이더니 이젠 공수처의 요청을 검찰이 뭉개버리는 상황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특히 검찰은 공수처와 사전 협의 없이 이 검사와 차 본부장을 기소하고 차후 공문만 보내면서 갈등을 해결하려는 의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단 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성윤 신임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이 13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누리홀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취임사를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1.1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성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장. ⓒ천지일보 DB

검찰이 공문을 보냈다는 1일 오후 7시 37분 이후 크게 시간이 흐르지 않은 시점부터 기소 보도가 이뤄졌다는 사실에 비춰 볼 때, 김 처장이 공문을 확인하지 못한 채 기사를 먼저 접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다만 김 처장도 세밀한 확인 없이 먼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가 향후 다시 입장을 내는 등 갈등 과정이 언론에 그대로 나가게 했다는 점에서도 비판을 피할 수 없을 전망이다.

두 조직의 충돌은 이게 끝이 아닐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가 법원에 검찰의 기소를 기각해달라는 의견서를 낼 것이란 관측도 일각에선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실제 공수처가 검찰의 기소를 막아서는 시도를 할 경우 두 조직의 관계는 더 수렁에 빠지지 않겠냔 분석이다.

결국 충돌을 막기 위해 공수처법과 형사소송법, 검찰청법 등 관련법을 수정하지 않는 이상 두 조직의 싸움은 계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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