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우 역사작가/칼럼니스트

대동단(大同團)의 임시규칙(臨時規則)은 크게는 두 가지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당 내용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전협(全協)을 비롯한 대동단원들은 자신들이 국내외 임시정부의 직분을 감당하려고 했다는 사실이 그들의 규칙과 세칙 속에 잘 나타나고 있는데, 이 같은 사실은 임시규칙 중에 주권과 자유권, 선거권, 병역과 납세의 의무, 의사회의 구성, 부의 구성 등을 규정함으로써 이것이 단순히 한 단체의 조직률이 아니라 오늘날 헌법적인 성격을 갖는 법규의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점으로도 알 수가 있다.

둘째. 대동단 조직의 실제 규모나 체계로 볼 때 임시규칙은 대동단의 현실과는 유리된 것이었다. 특히 임시규칙에 의한 중앙조직의 부서 역원 중에 총재(總裁) 김가진(金嘉鎭)만이 분명할 뿐 그외 부서의 역원은 어느 것도 뚜렷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임시규칙은 한 전단에 불과한 것임을 알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앞으로 확대될 조직을 예상하고 만들었거나 또는 조직 확대를 위한 선전용으로 작성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동단의 지하 활동이 활발해지자 일경의 수사망도 점점 좁혀 왔는데 대동단 총재 김가진은 더이상 국내에서 활동하기 어렵다고 판단하고 그 본부를 상해로 이전하기로 결심하여 밀사를 상해임정(上海臨政) 내무총장(內務總長) 안창호(安昌浩)에게 파견하였다.

김가진의 뜻을 파악한 안창호는 연통제(聯通制) 요원(要員) 이종욱(李鍾郁)을 김가진에게 보내어 환영의 뜻을 나타냈으며, 그 이후 김가진의 망명이 극비리에 추진되었다.

1919년 10월 대동단 총재 김가진은 상해임정에서 파견된 이종욱의 안내를 받아 아들 김의한(金義漢)과 함께 일산역을 출발하여 경의선을 타고 신의주를 거쳐 안동현에 도착하였다.

그곳에는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에이레 출신의 쇼오라는 사업가가 있었는데 에이레도 영국의 식민 통치에 대항하여 오래도록 싸워 온 나라이므로 독립운동에 깊은 관심을 보였으며, 그는 여러모로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였다.

또한 쇼오는 이륭양행(怡隆洋行)이란 무역회사를 경영하였는데, 영국계 태고 선박공사의 안동현 대리점을 맡고 있었다. 김가진 일행은 이륭양행이 대리하는 계림호 편으로 마침내 10월말, 상해에 도착하였다. 여기서 김가진의 탈출은 일제를 경악시켰으며, 상해임정에 그가 합류하였다는 상징적인 의미는 대단히 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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