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주 매헌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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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일 KBS 보도에 따르면 충청남도와 충남도의회가 ‘윤봉길 의사 표준영정 지정 해제 신청 및 교체’를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하는 방안을 검토한다고 했다. 현재 이 영정은 윤의사가 태어난 마을인 시량리(충남 예산군 덕산면) 소재 사당 ‘충의사’에 1968년부터 봉안되어 왔다. 윤의사 영정 봉안 당시 그 마을에는 부인 배용순 여사를 비롯해 친동생 및 친족, 동문수학하며 활동한 많은 친구들이 생존해 있었다. 그때는 물론 봉안 이래 수십년 동안 이들 중 그 누구도 영정에 대해 이견이 없었다.

논란의 발단은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행한 ‘친일인명사전’에 장우성이란 이름이 기재되면서 시작됐다. 윤의사의 영정을 그린 화가가 바로 장우성이다. 그간 윤의사의 영정 교체를 요구하는 사람들의 주장은 다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친일작가의 작품이다. 둘째, 25세 젊은 나이에 순국한 열혈청년 윤의사 모습답지 않게 나이가 많이 들어 보인다. 셋째, 일본 제국주의 전쟁범죄자에게 폭탄을 던진 독립투사의 기개가 영정에 드러나지 않는다.

우선 첫 번째 논점인 월전 장우성과 친일 행적의 연관성에 대해서 살펴보자. 월전이 친일화가로 분류된 주된 이유로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조선미술전람회(선전)’에 4회 연속 특선해 추천 화가가 됐고, 일제의 관제 성격이 강했던 ‘반도총후미술전’에도 출품한 일을 꼽는다. 이런 관점에는 일제강점기 모든 미술학도들이 화가의 길로 입문하는 유일한 등용문인 ‘선전’ 공모전에 응모했다고 친일화가로 단정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많다.

이처럼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활동한 예술가에게 오늘날의 잣대를 대는 게 과연 합당한가’라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월전이 1945년 8월 18일 결성된 ‘조선미술건설본부’ 위원으로 활동한 점이다. ‘조선미술건설본부’는 친일행적을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해방직후 자유와 독립의 정신을 근간으로 친일화가를 배제하고 조직된 미술단체였다. 이런 단체에 월전이 위원으로 참여했다는 것을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특히 평생 친일문제를 연구한 임종국 선생이 쓴 ‘황국신민화 시절의 미술계(1983년)’에 수록된 친일 미술가 명단에도 장우성 화백은 없다.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한 민족문제연구소는 반민특위 정신과 임종국 선생의 유지를 이어받아 설립된 단체다. 또한 대통령 직속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가 친일반민족행위 조사, 연구, 결정에 대한 내용을 수록해 2009년 11월 발간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에 이당 김은호와 운보 김기창의 이름이 올라 있으나 월전 장우성의 이름은 없다. 차제에 역사학자 등의 좀 더 깊은 연구와 시민의 의견 수렴을 통해 친일화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둘째 및 셋째 논점은 사람들이 윤봉길 의사의 삶과 정신을 정확히 모르는 데서 비롯됐다고 판단한다. 윤의사는 당시 풍습에 따라 15세에 결혼해 2남 1녀를 뒀고, 얼굴이 가늘고 긴 편이어서 나이가 들어 보였다. 더구나 옛날은 평균수명이 짧았듯이, 사람들의 모습도 나이에 비해 늙어 보였다. 그 당시 대개 20대 중반만 되어도 중년의 티가 부쩍 났다. 월전이 영정을 그릴 때 참고한 ‘의거 선서식’ 사진의 윤의사 모습도 30대 중후반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 독립운동사에 윤봉길의거만큼 세계를 진동시킨 사건은 없었다. 이에 많은 사람들에게 윤의사는 일제를 향해 폭탄을 던진 항일투사로 각인돼 있다. 하지만 재향시절 윤의사는 ‘일제보다 더 무서운 적은 무지’라고 주창하며 야학당를 설립해 문맹퇴치운동을 한 교육자였다. 또 경제자립이 조국독립을 이루는 첩경임을 깨닫고 농촌부흥운동을 펼친 선구적 농민계몽운동가였다.

또한 야학당 교재인 ‘농민독본’을 저술하고, 한시를 340여 편이나 쓴 문학가로서도 명성을 떨쳤다. 명문장가로서 윤의사의 필력은 의거 직전에 쓴 ‘자서약력’ 및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도 잘 드러나 있다. 이런 점에 비춰볼 때 현재 충의사에 봉안된 영정은 윤의사 생애 전반과 그 모습이 잘 표현된 작품이다.

또한 반세기 이상 봉안, 충의사를 찾아 예를 표한 많은 국민들에게 익숙한 그 자체만으로도 역사적 가치가 크다. 따라서 월전이 친일화가인지 아닌지 정부의 판정이 나올 때까지 지금 영정을 그대로 존치하는 것이 옳다. 지금 이 시점 생전에 윤의사를 실제 본 유족은 물론 친구들도 없고, 새롭게 발굴된 윤의사 사진도 없다. 성급한 영정 교체로 윤봉길 의사 모습이 엉뚱하게 투사의 모습만으로 왜곡될까 심히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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