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용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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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의 ‘브램튼 마노 아카데미’란 고등학교가 올해 입시에서 명문 사립고인 이튼 칼리지를 제치고 ‘옥스퍼드대와 케임브리지대’ 잠정 합격생을 더 많이 배출해 화제라는 기사를 읽었다. 학생 다섯 중 한 명꼴로 무상 급식을 받는 런던에서 빈곤율이 두 번째로 높은 지역의 학교로 근면, 규칙적인 생활, 노력을 강조해 새벽부터 방과 후 저녁 6시까지 학교에서 공부를 시킨다. 마치 도시락 2개 싸서 등교해 야자까지 하며 공부하던 20여년 전 한국의 고등학교 이야기 같다. 그런 무너지지 않았던 공교육이 그립다.

이 학교는 3주에 한 번씩 시험을 치러 학생들의 성취욕을 자극하고 복장도 교복만 허용하며 교사에게 항상 존칭을 사용해 존경심을 갖게 한다. “학생이 교사에게 ‘샘’이란 호칭으로 부르도록 한다”라는 게 무슨 혁신인 줄 기자회견 한 서울시 교육감의 촌극과 대비된다. 옥스퍼드대 입학 제안을 받은 학생은 “공부에 집중할 환경이 되고, 의지만 있다면 누구나 꿈을 이뤄낼 수 있다는 걸 우리가 증명했다. 가정환경, 출신 배경이 학업 및 사회적 성취에 장애물이 될 순 없다. 양질의 교육, 큰 꿈, 노력만 뒷받침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라고 했다.

마노 아카데미의 사례는 인재가 부족한 우리나라가 2000년대 초반까지 했던 교육방식이 학생의 올바른 성장에 나쁜 방식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 반면 현재 진보 교육감들이 추진하는 교육제도를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만든다. 학력고사로 대학을 가던 시절에는 사교육비를 거의 들이지 않고 학교 공부와 야간자율학습, 독서실, 도서관에서 학생의 노력만으로 개천에서 용이 나기도 했다. 지금의 수시·학종 입시제도와 비교하면 그 시대 입시가 가장 공정하고 금수저와 흙수저의 차별 없이 각자 노력과 열정만으로 계층 간 이동이 가능했다.

시험은 학생이 현재 자신의 수준을 객관적으로 돌아보고 성취욕을 자극해 다시 분발하게 하는 공부에서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시험을 통해 학습 동기가 부여되고 실패와 성공을 거듭하며 마음이 단단해져 사회에 진출했을 때 각종 난관을 이겨내는 힘을 길러주기도 한다. 그런 시험을 학교생활이 불행해진다는 이유로 중학교 1학년까지 7년 동안 한 번도 보지 않는다. 수준을 알 수 없어 불안한 학생들이 사설 시험을 돈을 내고 보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합리적인 교육제도를 개선할 생각은 안 하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책임질 글로벌 인재를 만들어 내는 자사고, 특목고 폐지에 행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대신 자기 자녀는 보내지 않는 혁신학교를 확대하며 하향 평준화를 못 해 난리다. 지금은 복잡해진 입학전형 탓에 학생들이 3년 내내 생기부에 적을 스펙 쌓기와 수능 공부에 치여 부모나 사교육의 도움 없이는 대입준비가 불가능하다. 금수저에게 전적으로 유리한 제도라서 부모의 능력에 따른 격차가 심화된다.

학종 탓에 부모의 신분이 학생의 진로를 좌우하는 사례가 많다. 스펙 품앗이를 하며 고등학생이 대학교수 논문에 공저자로 참여하고, 해외 의료봉사를 다녀오고, 위조한 표창장과 인턴확인서 등을 대학입시에 활용하는 일도 벌어진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 딸도 실력이 없으면 서울대를 못 가고 서강대를 가던 공정한 입시는 기대하기 힘들다. 지금은 조금만 권력을 가져도 자녀의 스펙 쌓기에 온갖 구린 짓을 마다하지 않는다.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부를 이용해 얼마든지 편법으로 명문대 입학 루트를 개척할 수 있는 제도는 사라져야 한다.

프랑스 학자 부르디외는 “문화의 소비, 예술에 대한 취향에 따라 계급이 존재한다. 그중에 교육은 계급 격차를 구분 짓는 가장 뚜렷한 도구이다”라고 했다. 빈부격차에 따라 받는 교육이 다르고, 입시제도가 불공정하게 적용되면 역설적으로 교육이 신분 격차를 공고히 하는 수단이 된다는 의미다. 진보 교육감들의 교육정책이 상류층의 신분을 더욱 공고히 하려는 저의가 숨어 있는 게 아닌가 의심스럽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 좋은 대학 가는 입시를 만들어야 한다.

학교는 99마리의 양을 팽개치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다니는 종교 기관이 아니다. 학교 안에 남아 있는 99마리 중에 더 낙오자가 생기지 않도록 잘 키우는 목적이 더 큰 곳이다. 진보 교육감이 추진하는 교육정책 대부분은 다수의 성실한 학생보다 한 명의 학교 부적응자, 한 명의 시험 보기 싫은 학생의 인권과 자율을 더 중시한다. 가재·붕어·개구리로 개천에 살면서도 불행한지 모르고 행복한 줄 착각하게 만든다. 아이들이 세뇌된 교육 탓에 노력으로 신분을 상승시키려는 의지조차 사라지는 게 더 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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