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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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관아에 있던 서리를 ‘아전(衙前)’이라고 불렀다. 육조를 모방해 육방(六房)을 뒀으니 이들이 최말단 공직으로 대 주민 공무를 담당했던 셈이다. 아전은 과거에 급제한 자들이 아니면서 백성들에게 ‘나으리’라고 불렸다. 아전도 권력이라 ‘기생이 아전서방을 두면 팔자를 고친다’는 속담도 전해 내려온다.

가을철 환곡을 징수하면서 가혹한 행위도 서슴지 않았던 아전들이 백성들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으리라. 세 징수를 위해 피도 눈물도 없이 부뚜막에 걸린 쇠솥 단지까지 압수해 간 아전들의 잔인한 행위에 민초들은 떨기만 했다.

아전들은 험상궂은 나졸들을 데리고 집을 찾아다니며 윽박지르며 세금 독촉을 했는데 이들은 ‘맹차(猛差)’라고 불렸다. 조선말 전라도 고부에서 봉기한 동학혁명의 시초는 바로 아전들의 횡포에 반발한 것이었다.

다산 정약용은 다산논총 ‘간리론’에서 이들이 나라를 망치는 자들이라고 개탄했다.

“백성은 토지로 논밭을 삼지만, 아전은 백성을 논밭으로 삼는다.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골수를 긁어내는 것을 농사짓는 일로 여기고, 머릿수를 모으고 마구 징수하는 것을 수확으로 삼는다. 이것이 습성이 돼 당연한 짓으로 여기게 됐으니, 아전을 단속하지 않고서 백성을 잘 다스릴 수 있는 자는 없다.”

고전 춘향가에서 신관사또 변학도는 기생점고를 한 후 춘향을 알게 된다. 신임 사또의 호색을 미리 알고 점수를 따기 위해 호방이 춘향을 귀띔한 것이다. 아전들은 지방 수령들의 발밑에서 눈치껏 아첨하고 백성들의 등을 쳐 금전을 갈취했다.

아전의 비리는 이들이 녹봉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고서 청렴을 표방한 군자의 나라 조선은 후기에 이르러 부패한 속물이 아니었나 싶다.

신관사또가 부임하면 제일 바쁜 게 아전들이다. 어떻게 하면 사또의 마음을 기쁘게 해 줄 소위 ‘건’을 찾는 것이다. 이들의 그물망에 걸려든 고기는 양반이 아니면서 장사를 해 재물을 모은 부자였다.

아전들은 이들의 소행을 미리 조사해 사또에게 비행을 보고하고 잡아다 곤장 틀에 매다는 것이다. 아무 죄 없이 끌려온 부자는 ‘네 죄를 네가 알렸다?!’라고 호통을 치는 사또의 취조에 그만 무조건 잘못했다고 빌어야 한다.

부자를 옥에 집어넣으면 그 다음 가족들을 만나 석방 조건을 협상하는 것은 아전의 몫이다. 사또에게 금전이 오고가고 심지어는 명당이나 문전옥답까지 바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아전은 금전의 일부를 떼거나 전답을 얻기도 했다. 이것이 간리들의 실체였다. 청렴한 수령은 아전들이 모함하고 왕따까지 시켰다. 이러니 올바른 관리들은 한 곳에 오래 있지 못했다. 충무공 이순신이 오직 부정을 눈감지 않고 아전을 처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라좌수사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근무할 때 충무공은 부정을 적발해 수시로 아전들을 처벌했다는 기록이 있다.

한국토지공사 직원들의 투기의혹이 일파만파, 이제는 지방자치단체까지 확대되고 있다. 세종시, 용인시, 전남도도 전수조사까지 벌이고 있다. 생선가게 앞에 고양이를 두고 지키라고 한 격이다. 이 같은 부정행위가 이 정부 들어서만 된 것은 아닐 것이다. 부패공화국이란 별명이 실감난다.

공직자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재산 이익을 취하는 행동은 조선시대 아전 행태 같은 범죄행위다. 그런데도 죄의식을 느끼지 못하고 부러우면 토개공에 들어오라고 비아냥까지 했다고 한다. 나라가 어떻게 이 지경까지 이르렀나. 공정과 정의가 무너지니 콩가루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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