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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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한 결혼식에서 축사를 했다. 신랑이 오래전 대학 강의에서 스승와 제자로 만난 인연으로 인해 축사를 부탁해 이뤄진 것이다. 특히 신랑은 같은 길을 걷는 기자 후배여서 흔쾌히 수락했다. 신랑은 1년여 전 칼럼에서 ‘멘토 선배는 가고 멘티 후배는 오고’라는 제목으로 다뤘던 적이 있다. 그는 2년 전부터 모 방송국 스포츠부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꿈 많은 청년이다.

결혼식이 있기 1주 전 갑자기 “교수님, 제가 결혼을 하게 됐습니다. 미리 말씀드려야 했는데, 좀 늦게 연락을 드리게 됐습니다”며 식사를 같이 하고 싶다는 연락을 해왔다. 제자는 식사 자리에서 “사실 제가 스포츠 기자가 된 것은 교수님의 수업을 받게 되면서 였습니다”라며 “교수님의 격려와 관심을 받으며 기자가 되겠다는 꿈을 구체화할 수 있었습니다”며 자신의 결혼식에서 축사를 해주었으면 하는 바램을 얘기했다. 지난해 한 번 만나 방송사 기자가 됐다는 것을 알았을 뿐인 제자가 이처럼 자신의 마음 속에 필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고 상당히 놀랐다. 대학에서 배운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자신이 스스로 꿈을 세우고 도전하는 건강한 젊은이를 만났기 때문이다.

다소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제자의 순수한 마음을 지켜주고 싶어 축사를 결심하게 됐다. 주례 없는 결혼식에서 축사는 신랑과 만난 인연과 결혼 덕담, 축하말 등으로 별도의 원고 없이 즉석 스피치로 했다. 스승과 제자로 만나 같은 기자의 길을 걷는 동반자이기도 해 딱딱한 원고로 읽어 나가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얘기식으로 풀어나가는 게 더 좋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먼저 대학에서 선생과 학생으로 만난 이야기와 이후 스포츠 공공기관에서 실시한 1년간의 기자 전문교육 프로그램에서 다시 인연을 이어갔던 것 등을 말했다.

되돌아보면 제자를 위해 스포츠 기자로서의 기본기와 필자의 경험 등을 교육시간에 많이 소개했던 것 같다. 일선기자, 데스크, 편집국장을 거치며 20여년간 스포츠 현장을 지킨 뒤 대학에서 스포츠 저널리즘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고 후학들을 가르친 필자는 스포츠 기자로서의 소명의식과 자부심, 열정 등을 강조했다. 왜 기자가 돼야 하는 가에 대한 문제 의식이 분명해야 하며, 일단 기자가 된 후에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부심을 갖고 마치 신들린 듯 열정을 갖고 자기 일에 몰두해야 한다고 말했다.

제자는 대학 졸업 직후 자신의 꿈을 이룰 언론사에 입사하기 위해 스포츠 관련 회사에 취직해 2년여간 근무를 했다. 나름대로 기자 시험에 대비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은 끝에 원하던 공영 방송사 스포츠 기자로 입성할 수 있었다. 제자는 입사 시험 최종 면접에서 자신이 존경하는 스포츠언론인으로 필자를 얘기했다고 말한다. 이 말을 처음 듣는 순간, 당황스럽기는 했지만 솔직하고 진정성이 있는 제자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제 관계도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엄격한 수직적 관계에서 이제는 서로 공감하는 수평적 관계로 변하고 있다. 제자가 잘 한 것을 칭찬하고 격려하며 친구처럼 따뜻하게 맞아주는 게 지금의 이상적인 스승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제자는 스승을 경험과 지식이 있는 인생의 선배로서 모시며 존경해야 성장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다.

결혼식에서 제자는 더 없이 행복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기자로서 부푼 꿈을 꾸며 소담스러운 가정을 이룰 젊은이라는 믿음과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필자는 축사의 마지막을 “행복하게 잘 살게”라는 말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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