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들은
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들은 "부의 성을 디폴트로 삼고, 모의 성을 따르는 것을 '예외'로 두는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다"며 부성우선주의 원칙 폐지를 요구했다. (출처: 연합뉴스) 2021.3.18

이설아·장동현 부부, 민법 781조 1항 폐지 헌법소원 청구

해당 법조항, ‘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

“입법목적 찾지 못해… 구시대적 가족제도 종점 찍을 때”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태어난 아이가 남편의 성을 우선 따르게 하는 이른바 ‘부성우선주의’에 대해 한 시민활동가 부부가 헌법에 위반된다며 헌법소원심판청구를 냈다.

시민활동가 이설아·장동현 부부는 18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구시대적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다”면서 ‘자는 부(父)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규정한 민법 781조 1항을 폐지해야 한다며 이같이 헌법소원을 냈다고 밝혔다.

이들 부부에 따르면 앞서 부부는 지난해 12월 2일 구청에 혼인신고를 진행한 뒤 가족관계등록공무원에게 자녀의 성·본을 모(母)인 이설아씨 쪽 성본으로 따르도록 하는 방법을 문의했다. 그러자 해당 공무원은 “태어날 모든 자녀의 성과 본을 모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한다는 내용의 협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제했다.

하지만 부부는 이와 같은 행위에 의문을 가졌다. 그들은 ▲왜 아이의 성을 아이가 태어날 때가 아니라 ‘혼인신고 당시’ 정해야 하고, 이를 번복하려면 소송을 불사해야 하는지 ▲왜 아이 성을 부와 모 중 선택하게 하지 않고, 모의 성을 따를 때만 ‘별도로 체크’하게 하는지 ▲부의 성을 따를 땐 받지 않는 협의서를 모의 성을 따를 때만 받는지 수많은 의문을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시민활동가 이설아·장동현 부부가 구청에서 작성한 ‘자녀의 성과 본을 모(母)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는 내용의 협의서. ‘부(父)의 성이 기본 값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협의서를 써야 한다’는 게 이들 부부가 제기한 문제의 시작이다. (제공: 이설아씨)
시민활동가 이설아·장동현 부부가 구청에서 작성한 ‘자녀의 성과 본을 모(母)의 성과 본으로 정하기로 협의한다’는 내용의 협의서. ‘부(父)의 성이 기본 값이기 때문에 이 같은 협의서를 써야 한다’는 게 이들 부부가 제기한 문제의 시작이다. (제공: 이설아씨)

이에 이들은 민법 781조 1항이 헌법 36조 1항인 ‘혼인과 가족생활은 개인의 존엄과 양성의 평등을 기초로 성립되고 유지돼야 하며, 국가는 이를 보장한다’는 혼인과 가족생활에 관한 기본권 조항과, 10조의 인격권, 자기결정권, 부모가 자녀의 성명을 지을 자유를 침해당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결국 부부의 선택은 헌법재판소를 찾는 것이었다.

이들은 “부성주의와 이에 기반한 부계혈통주의는 남아선호 관념으로 이어지며, 가족 내부에 있어서의 딸의 지위를 아들의 지위에 비해 부차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만들어왔다”며 “이는 과거 가족구성원의 대표를 남성으로만 규정하던 13년 전 폐지된 ‘호주제’의 산물”이라고 꼬집었다.

이들은 “부(父)가 그들의 자녀에 대해 자신의 성을 부여하는 것은 당연한 사실로 받아들여지지만, 모(母)는 자신의 성을 그 자녀에게 부여할 수 없다는 사실은 자녀에 대한 관계에 있어 모의 지위가 부의 지위에 비해 명백히 차별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자녀는 부의 성을 따름으로써 부를 가족의 중심으로 여기게 되고 부와 자녀가 동일한 성을 사용해 혈연적 일체감이 자연스럽게 드러남에 비해 모는 자신의 가족들과 다른 성을 사용하게 돼 심리적으로 소외감을 느끼는 경우도 적지 않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

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들은
18일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이설아(왼쪽), 장동현씨 부부가 부성우선주의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 청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이들은 "부의 성을 디폴트로 삼고, 모의 성을 따르는 것을 '예외'로 두는 구시대적인 가족 제도에 종점이 찍힐 때가 왔다"며 부성우선주의 원칙 폐지를 요구했다. (출처: 연합뉴스) 2021.3.18

이 때문에 민법 781조 1항이 규정하는 부성주의가 부(父)와 남성을 중심으로 한 혈통 계승을 강제해 부와 남성을 가족의 중심에 놓고, 가부장적 가치질서를 유지·강화하고 가족 내 여성의 지위를 남성에 비해 부차적이고 열등한 것으로 놓이게 해 여성을 차별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부부는 “현행법이 성의 부여에서 부모를 차별취급하고 있는 유일한 기준은 오직 남성과 여성, 즉 성별”이라며 “그러나 생물학적 혈통관계에서 볼 때 부의 혈통과 모의 혈통은 개인에게 동시에 전달돼 존재하는 것이므로 남녀의 생물학적 성별의 차이를 근거로 부성주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민법 781조 1항은 모든 개인으로 하여금 원칙적으로 부의 성을 따르도록 하고 별도의 협의가 있음을 적극적으로 증명하지 않으면 모의 성을 사용할 수 없게 해 남성과 여성을 차별취급하고 있으면서도, 그와 같은 차별취급에 대한 정당한 입법목적을 찾을 수 없어 혼인과 가족생활에 있어서의 양성의 평등을 명하고 있는 헌법 36조 1항에 위반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와 국회에서도 부성우선주의 폐지를 위한 움직임이 진행되는 중이다. 법무부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위원회는 지난해 5월 부성우선주의 폐지를 권고한 바 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정경태 의원도 지난 2일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민법 781조의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춘숙 의원은 지난해부터 관련된 법 개정안을 꾸준히 추진하고 있다. 정의당 이은주 의원도 ‘차별 없이 성‧본 쓰기 2법(민법 일부개정법률안 및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해 발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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