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우 부산환경교육센터 이사

not caption

진화란 한마디로 변화를 의미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세대 간에 일어나는 생물체의 형태와 행동의 변화를 뜻한다. DNA의 구조로부터 사회생활에 이르기까지 생물의 형질은 세대를 거치면서 조상의 형질로부터 변화한다. 이러한 진화의 원리로 생물계를 이해하는 이론이 진화론이다.

그런데 이 진화론만큼 오해를 받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 이론도 흔치 않다. 그중 대표적인 것 하나가 동물계에 위계가 있다는 관념이다. 즉, 동물계는 하등동물과 고등동물로 나누어지며, 하등동물이 고등동물로 진화한다는 생각이다.

하등동물이 고등동물로 진화한다는 가정은 언뜻 자연스러워 보인다. 우리는 원숭이가 고등동물이고 지렁이가 하등동물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잘 이해해왔다고 생각한다. 진화는 그 사실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줬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하등동물과 고등동물은 지능의 발달이나 기관의 복잡성을 기준으로 나누는 게 아니다. 하등동물과 고등동물을 나누는 기준은 원시성에 있다. 즉 공통조상에 가까운 쪽이 하등동물이고 먼 쪽이 고등동물인 셈이다.

우선 사람이 침팬지에서 진화하지 않았듯이 원숭이도 지렁이에서 진화하지 않았다. 그들은 공통조상을 갖고 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의 공통조상은 원숭이보다는 지렁이를 더 많이 닮았을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지렁이는 원숭이보다 더 원시적이라는 표현은 가능하다. 하지만 원시적이라는 말은 공통선조 이래 변화가 더 적었다는 말, 즉 선조를 닮았다는 뜻일 뿐 단순하다거나 덜 복잡하다는 뜻은 아니다. 말의 발은 사람의 발보다 단순하지만, 사람의 발이 더 원시적이다. 왜냐하면 우리와 말의 공통조상은 우리처럼 발가락이 다섯 개였는데, 우리는 그대로인 반면에 말은 한 개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원숭이는 지렁이보다 더 사람을 닮지 않았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래서 어떻다는 것인가? 왜 우리는 사람을 기준으로 다른 생물들을 판단해야 하는가? 진화가 어떻게든 인간을 향한다거나 인간이 ‘진화의 최종 단계’라는 가정은 결코 진화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그렇다면 원숭이는 그리고 다른 고등동물들은 지렁이보다 그리고 다른 하등동물보다 더 생존에 뛰어난가? 이 역시 그렇지 않다. 현생 종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모두, 적어도 현재까지는 생존에 성공했다. 많은 사람이 쥐나 바퀴벌레를 가리켜 고릴라나 오랑우탄보다 하등하다고 말하지만, 번성하는 것은 쥐와 바퀴벌레이고, 멸종 위기에 처한 것은 고릴라와 오랑우탄이다.

같은 맥락에서 원숭이가 지렁이보다 더 똑똑하다거나 게놈이 더 크다거나 체제가 더 복잡하다거나 하는 생각도 사실이 아니다. 동물에게 등수를 매기는 척도는 무수하게 많으며 그중 한 사다리에서 높았던 동물이 다른 사다리에서는 높지 않을 수도 있다. 포유류는 도롱뇽보다 뇌가 분명히 더 크지만, 게놈의 양은 몇몇 도롱뇽보다 적다. 매한가지로 인간의 지능이라는 잣대에 맞춰 다른 동물의 능력을 비교하는 것 또한 난센스다. 어둠 속에서 방향을 잡는 능력을 비교하면 초음파를 활용하는 박쥐들이 인간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고등이니 하등이니 하는 말에 분명한 의미가 있기라도 한 듯 현생 종들을 사다리에 올려 등수를 매기는 짓이 얼마나 난센스이며, 비진화적인 생각인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알아야 할 진화의 진실은 지구상의 모든 생명은 동등하다는 점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진화를 진보와 동일하게 생각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 또한 잘못된 생각이다. 진보라는 말 속에는 목적의 개념이 내포돼 있다. 하지만 진화에는 목적성이 없다. 진보가 발전을 전제로 미래로 나아가는 방향성이 있다면 진화는 진보가 아니다. 서두에 말했듯이 진화는 변화일 뿐이고 방향성이 없다. 진화는 환경에 적응하는 기제고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진화란 단순한 진보가 아니라 다양성이 증가하는 방향으로 변화해온 과정이다.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란 철저하게 상대적인 개념이다. 생물은 결코 절대적인 수준에서 미래지향적인 진보를 거듭하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환경 속에서 제한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고 있는 다른 개체들보다 조금이라도 낫기만 하면 선택 받는다는 다분히 상대적인 개념이 진화의 기본원리이다.

친구와 함께 곰을 피해 달아나던 한 나그네의 우화가 있다. 한참 도망가는데 옆에 있던 친구가 절망적인 표정으로 “뛰어봐야 소용없네. 우린 결코 저 곰보다 빨리 달릴 수 없어.” 그러자 나그네는 “내가 저 곰보다 빨리 달릴 필요는 없네. 그저 자네보다 빨리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진화는 이런 것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