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이 전남 순천 선암사 소유권을 두고 약 70년간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호명스님(왼쪽)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천지일보 2021.3.11
대한불교조계종과 한국불교태고종이 전남 순천 선암사 소유권을 두고 약 70년간 갈등을 빚고 있다. 사진은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호명스님(왼쪽)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스님. ⓒ천지일보 2021.3.11

대법, 원심 깨고 태고종 손 들어줘
조계종 대책위 출범… 활동 본격화
태고종은 조계종에 대화·타협 제시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한국 불교의 양대 산맥이라 불리는 대한불교조계종(총무원장 원행스님)과 한국불교태고종(총무원장 호명스님)이 약 70년간 전남 순천 선암사 소유권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그간 조계종은 선암사가 종단 내 제20교구본사인 중요사찰인데다가 1969년 대법원 판결에 의해 법적 소유권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태고종은 1960년대부터 종단 내 유일한 교구본사급 전통사찰인 선암사를 비운 적이 없다고 강조하며 소유권을 얻기 위해 맞서고 있다.

70여 년간 제 주인을 찾지 못했던 선암사의 소유권은 과연 누구에게로 돌아가게 될까.

◆70여 년간 선암사 소유권 분쟁 중

애초 선암사는 조계종과 태고종 모두의 것이었다. 두 종단은 본래 한 뿌리였기 때문이다. 하나였던 불교 종단의 분규가 시작한 것은 해방 직후 일제가 정책적으로 대처승(帶妻僧) 제도를 장려한 것에 이어 1954년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승을 본따 가정을 가지고 사는 승려들은 모두 사찰에서 나가라’는 유시를 내리면서부터다.

이때부터 비구-대처 갈등으로 갈라진 두 종단은 각종 소송을 거치며 사찰 쟁탈전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전국 대부분 사찰의 소유권을 조계종이 갖게 된다.

그 와중에 마지막으로 남은 사찰이 바로 ‘선암사’다. 선암사가 위치한 전남 순천시 승주읍 일대 토지는 당초 조계종의 소유였다. 그런데 선암사는 태고종에 의해 관리돼 오면서 두 종단은 선암사의 소유권을 두고 분쟁을 벌이게 된다.

이에 정부는 양측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순천시를 선암사의 재산관리인으로 임명했다. 이로써 선암사의 소유권은 조계종, 점유권은 태고종, 재산관리권은 순천시가 갖게 됐다.

그런데 선암사를 대신 관리하던 순천시가 2008년 태고종으로부터 토지사용 승낙을 받아 부지 일대에 문화체험관을 짓게 되면서 갈등은 재점화 된다.

이에 2011년 조계종은 선암사에 건립한 차 체험관을 철거하고 부지를 인도하라며 순천시를 상대로 ‘선암사 전통야생차체험관 건물철거 소송’을 냈다. 1심과 2심은 선암사 부지에 대한 소유권은 조계종에 있다며, 문화체험관을 철거해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24일 대법원은 “특정 종파의 권리를 인정하려면 현재 사찰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 선암사가 실질적으로 태고종 소속일 가능성이 크다”며 1심과 2심의 조계종 승소 원심을 뒤집고 광주지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원의 파기환송은 태고종이 조계종을 상대로 제기한 ‘선암사 등기명의인표기변경등기말소’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소송의 골자는 선암사에 대한 조계종의 소유권을 태고종으로 돌려달라는 것이다.

◆태고종 “조계종이 통 크게 양보해 달라”

이와 관련 태고종 총무원장 호명스님은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선암사가 누구의 것인지 보다 누가 더 잘 운영할 수 있는지 큰 틀에서 봐 달라”며 조계종에 선암사를 양보해달라고 완곡하게 부탁했다. 호명스님은 “태고종이 전국에 사찰이 3000여개가 있으나, 지방엔 강원(스님 교육) 용도로 사용할 만한 역사와 전통은 물론 규모를 갖춘 곳은 선암사뿐이니 우리 종단으로서는 사활이 걸린 문제”라며 “조계종이 부처님 마음으로 통 크게 양보해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다”고 했다.

덧붙여 “선암사 문제해결이 소송으로 끝난다면 국민은 스님들이 재산다툼이나 한다고 비판할 것”이라며 “스님들은 신도들에게 ‘양보하고 살라. 비우고 나누고 적게 갖으라’고 늘 법문하지 않느냐. 이처럼 (우리도) 부처님 말씀대로 살아야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태고종 무단점유” 강경대응 나선 조계종

대법원의 판결에 대해 조계종은 1월 13일 입장문을 내고 “국가법에 의해 조계종에 귀속된 선암사만이 진실한 실체며 다른 법적 실체가 존재할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조계종은 “대법원의 이번 판결은 권한 없이 선암사를 점유하며 거주하는 태고종 승려들에 의한 착시적 현상에 집착해 사찰령 및 불교재산관리법의 규정과 의미, 내용에 대한 깊은 성찰 없이 표피적인 판단을 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조계종은 ‘선암사 정상화’를 명분으로 ‘한국불교 역사왜곡 사법부 규탄 및 한국불교 정체성 확립과 정화정신 계승을 위한 대한불교조계종 대책위원회(가칭)’ 출범을 결의했다. 대책위는 총무원장 원행스님을 위원장으로 중앙종회, 교구본사, 전국비구니회, 중앙신도회 등 포교신행단체 인사 200명으로 꾸려졌다. 대책위는 향후 위원 인선과정과 상임위 회의 등을 거쳐 다음 달 초 공식 출범 기자회견을 갖고 실질적인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을 내놓았다.

지난 9일에는 ‘조계종 선암사 정상화 특별법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제정안에는 “‘조계종 선암사’에 권원 없는 ‘태고종 선암사’가 무단으로 점유하고 있음에 대해 정상화를 이뤄 정화정신을 회복하고, 한국불교 전통이 후대에 계승될 수 있도록 교구본사 지위회복과 교구 운영에 관한 제반 사항을 규정함에 목적을 둔다”고 적었다.

이처럼 선암사를 두고 조계종과 태고종이 장기간 분규를 계속하는 가운데, 내달 29일에는 현재 광주고등법원에 계류 중인 등기말소 소송 항소심의 변론이 재개된다. ‘선암사 전통야생차체험관 건물철거 소송’이 파기환송 후 진행되는 심판이어서 조계종의 승산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이에 이리저리 옮겨 다녔던 선암사의 소유권은 누구에게로 돌아갈 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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