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전경. ⓒ천지일보 2021.3.1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전경. ⓒ천지일보 2021.3.1

군산시 미장동 서래장터

한강 이남 최초 3.1만세운동

구암동산 역사공원 조성해

28번 만세운동 3만여명 참가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한강 이남 최초로 3.1만세운동이 일어난 군산시 미장동 서래장터. 본지는 3.1절 102주년을 맞아 1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의 독립정신을 기릴 수 있는 ‘군산의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을 찾았다. 군산 만세운동은 당시 군산영명학교 교사와 학생이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3월 6일 서래장날을 기점으로 거사를 준비했으나 3월 4일 일본 경찰이 주모자를 연행해 하루 앞당겨 시위에 들어가 ‘3.5만세 운동’ ‘서래장터 만세운동(설애장터 만세운동)’ 등으로 불린다.

◆3.1운동 100주년기념관

군산시 구암동에 있는 구암동산은 군산시가 지난 2016년 9월 3.1운동 역사공원으로 조성했다. 역사공원 내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인 군산 3.1운동 100주년기념관은 1919년 한강 이남 최초의 3.1만세운동과 28번의 만세운동으로 총 3만여명이 참가한 거사의 역사성과 전북지역 최다수의 순국자가 발생한 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2018년 개관했다.

기념관은 당시 교사와 학생이 주도적으로 3.5만세운동을 이끌었던 역사성을 널리 알리고, 호국보훈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자 옛 영명학교(현재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재현해 연면적 969.2㎡의 지상 3층 규모로 조성됐다.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1일 3.1절 102주년을 맞아 한 가족이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2층을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1일 3.1절 102주년을 맞아 한 가족이 3.1운동 100주년 기념관 2층을 둘러보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

기념관 내부공간은 단순한 전시·관람보다는 다양한 체험교육 공간에 맞춰 조성됐다.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공간인 1층 추모 기록실(독립의 빛)에는 군산의 3.5만세 운동과 항일독립운동에 대한 역사를 기록했으며 추모의 벽을 통해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공간으로 구성됐다.

100년전 그들을 따라 그날의 함성과 나라 사랑 정신을 느끼는 공간인 2층 역사 재현실(그날의 함성 속으로)에서는 관광객들이 직접 당사자가 되어 그날의 함성과 뜨거운 나라 사랑 정신을 직접 느껴 보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아날로그와 디지털프로그램이 공존하는 다양한 나라 사랑 체험, 교육 공간이 갖춰진 3층은 체험교육실(그들과의 이어짐)로 태극기 만들기, 태극기 전파하기, 만세운동 전파하기, 겨레의 함성, 독립군 기념촬영 등 여러 가지 재미있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군산의 3.1운동100주년기념관은 독립운동의 중요한 기지였던 역사적 의미를 부각해 군산이 근대역사의 아픔뿐 아니라 3.1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간직하고 있는 점을 강조해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데 힘을 실어줄 것으로 보인다.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태극기 탁본체험. ⓒ천지일보 2021.3.1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태극기 탁본체험. ⓒ천지일보 2021.3.1

◆군산 3.1운동 발자취

군산의 기미 3.5만세 운동은 당시 군산영명학교를 졸업하고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 학생인 김병수가 1919년 2월 26일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이갑성으로부터 ‘독립선언서’ 200여매를 전달받아 군산 영명학교 스승인 박연세, 이두열에게 1919년 2월 28일에 전달함으로 구체적인 거사가 시작됐다.

영명학교 기숙사에서 독립선언서 3500매 복사와 태극기 수백장을 그리고 만드는 작업을 비밀리에 착수해 3월 6일 서래장날을 기점으로 전개하되 영명학교 교직원, 학생, 구암병원 사무원, 신자들과 일반 시민까지 확대돼야 성공할 수 있다는 사전 모임의 결의와 준비로 3월 4일까지 거사를 위한 모든 준비를 완료했으나 3월 4일 새벽 군산경찰서의 일본인 무장경찰 수십명이 출동해 주모자인 박연세, 이두열, 김수영, 고석주, 송정현 등을 구인하는 바람에 사전 발각됨으로 좌절될 뻔했다.

그러나 김윤실 교사를 중심으로 격분한 학생들이 모여 만장일치로 3월 4일에 잡혀간 교사들의 석방을 위한 시위가 첫 만세 시위운동이 됐고 일본 경찰의 진압이 자극제가 돼 만세시위는 1919년 3월 5일에 대대적으로 일어났다.

1903년 2월 미국 예수교 남장로회선교회에서 기독교 선교를 목적으로 설립한 영명학교, 멜본딘 여학교 교사와 학생, 구암 예수병원 사무원, 구암교회 교인 등이 주축이 됐다. 이어 천주교·불교·범종교와 시민도 합세해 1000여명의 시위 군중이 됐다.

당시 군산시 인구는 1만 3604명(한국인 6581명, 일본인 6809명, 외국인 214명)으로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228명 더 많았다.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1일 3.1절 102주년을 맞아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
[천지일보 군산=조민희 기자] 1일 3.1절 102주년을 맞아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에서 어머니가 아이에게 역사를 설명해주고 있다. ⓒ천지일보 2021.3.1

이 만세운동은 1919년 3월부터 5월까지 총 28회에 걸쳐 연인원 3만 7000여명이 참여했으며 사망자 53명, 실종 72명, 부상 195명이 발생했다. 이는 호남 최초는 물론이고 한강 이남 최초의 거사로서 전북지역 최다수의 순국자가 발생한 사건이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관을 가족과 방문한 조인성(20대, 남)씨는 “3.1절 맞아 가족들과 처음으로 기념관에 왔는데 군산에 이렇게 잘 갖춰진 곳이 있다는 게 신기했다”며 “3층은 아이들이 체험할 게 많아서 아이들도 역사를 알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민지(30대, 여)씨는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마음에 더 와닿는 것 같다. 3.1절에 그냥 집에서 태극기만 달고 크게 의미를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 기념관에 와서 전시된 것들을 보니 군산에서 3.5만세 운동이 일어난 사건들을 쉽게 알 수 있는 좋은 날이었다”며 “많은 사람들이 역사에 더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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