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전남 나주시 김천일대대 예비군교육관에서 제8332-4부대 소속 국군장병 100여명이 나주시가 ‘충성! 품격있는 군인! 명품 인성교육’을 주제로 마련한 맞춤형 평생교육을 받고 있다. (제공: 나주시) ⓒ천지일보 2019.2.20
예비군 관련 이미지. ⓒ천지일보 DB

미군 학살 영상 보고 충격

어머니·친지 설득으로 입대

군복무하며 ‘살인 안 돼’ 확신

“예비군 대신 징역형” 주장도

법원 “손실 감수하는 진실”

[천지일보=홍수영 기자] 종교가 아닌 비폭력 신념을 이유로 예비군 훈련을 거부할 수 있다는 대법원 판단이 사상 처음으로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이흥구 대법관)는 25일 예비군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A씨의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이는 종교가 아닌 윤리·도덕·철학적 신념도 진정한 양심이라면 훈련을 거부할 만한 정당한 사유로 인정한 첫 사례다.

앞서 대법원은 지난 2018년 11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무죄를 처음 확정했다. 이후 지난달엔 종교적 신념을 이유로 한 예비군 훈련 거부도 역시 무죄로 판단해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무죄가 확정된 A씨는 지난 2013년 2월 제대한 뒤 2016년부터 2018년까지 16차례에 걸쳐 예비군훈련소집 통지서를 전달받고도 훈련에 불참하는 등 훈련을 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서울=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동 송파예비군훈련장에서 열린 2018년 첫 예비군 훈련에서 예비군 대원들이 도심지 구조물 극복 훈련을 하고 있다.
(서울=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동 송파예비군훈련장에서 열린 2018년 첫 예비군 훈련에서 예비군 대원들이 도심지 구조물 극복 훈련을 하고 있다.

당시 재판에서 A씨는 폭력적인 아버지와 옆에서 고통을 받던 슬하에서 성장해 어렸을 때부터 폭력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게 됐고, 미군이 헬기에서 기관총을 난사해 민간인을 학살하는 동영상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고 강조했다.

이후 여러 매체를 통해 살인이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를 수 있는 가장 끔찍한 잘못임을 깨닫고 전쟁이 이를 정당화활 수 없다는 신념을 가지게 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어머니와 친지들의 간곡한 설득에 입대를 했다. 전과자가 되는 게 어머니에게 불효하는 행동일 수 있다는 생각이 컸다고 한다. 하지만 복무를 하며 전쟁에서 총을 쏠 수 없을 것이란 확신이 생겼고, 도리어 자신이 군 복무를 하는 게 국가와 국민에게 해가 될 수 있다는 판단에 입대를 후회했다.

이에 A씨는 군사훈련을 받지 않는 회관관리병으로 자원해 병역을 마쳤다. 이후 제대한 그는 더는 양심을 속이지 않겠다고 결심해 예비군 훈련을 거부해왔다.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남서초예비군훈련장 표지판. (출처: 뉴시스) 2020.04.29.
서울 서초구 내곡동 강남서초예비군훈련장 표지판. (출처: 뉴시스) 

1심은 “A씨는 수년간 계속되는 조사와 재판, 사회적 비난에 의해 겪는 고통과 직장을 얻기 어려워 입는 경제적 손실 등을 감수하고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를 일관해 주장하고 있다”며 “오히려 유죄로 판단되는 경우 예비군 훈련을 면할 수 있는 중한 징역형을 선고받기를 요청하고 있다”고 무죄를 선고했다.

실제 A씨는 기소와 재판 등으로 일용직이나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는 생활을 지속했다.

2심 역시 “A씨가 병역거부 중 가장 부담이 큰 현역 복무를 이미 마쳤는데도 예비군 훈련만을 거부하기 위해 수년간의 불이익을 모두 감수하고 있다”며 “양심이 진실하지 않다면 예비군 훈련을 다녀오는 것이 훨씬 유리할 것임에도 양심과 타협하지 않기 위해 훈련 거부를 선언하고 있다”고 무죄를 유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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