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동서울터미널에서 30년씩 장사를 한 임차상인들이 가게를 빈손으로 내주고 쫓겨나게 생겼다. 몇 개월 전에 동서울터미널에 들렀는데 많은 가게 앞에는 ‘생존권 보장하라’는 문구가 적힌 종이가 붙어 있었다. 단순한 외침이 아니고 삶터를 지키고자 하는 민중들의 절규였다.

임대인은 한진중공업이다. 한진중공업의 최대 주주는 한국산업은행이다. 한진중공업은 동서울터미널 부지를 신세계에 매각했다. 신세계와 한진중공업은 개발을 위한 법인 신세계동서울피에프브이를 설립했다. 지분은 신세계 프라퍼티가 85%, 한진중공업이 10%, 산업은행이 5%를 보유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들이 동서울터미널 부지 개발에 나선 것은 이익이 남기 때문이다. 상인들에게 정주권을 보장하지 않고 내쫓는 것은 이익을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다. 임차인 보호라는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는 재벌기업도 문제지만 국책은행 산업은행이 상인들 내쫓는 데 협력하고 있는 것은 더욱 심각한 일이다.

임차인의 존재를 한국처럼 가볍게 대하는 나라는 보기 드물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임차상인은 어떤 존재인가? 임차인을 ‘계약관계의 한 쪽 당사자일 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계약기간이 끝났다거나 그 상가는 권리금 보호 대상이 아니라고 할 것이다. 보증금을 줬으면 됐지 무엇이 문제냐고 반문하거나 나가겠다는 내용의 화해조서를 작성했는데 무엇이 문제냐고 물을 것이다. 또 ‘우선 임차권’은 법률에 없는 내용이라고 강변할 것이다.

상가임차인에게는 권리가 있다. 바로 인권이다. 그리고 주거권 또는 정부권이다. 주거권의 관점으로 볼 때는 상가는 상가 운영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곳이기 때문에 주거 공간의 하나로 본다. 그런 까닭에 선진국 가운데 많은 나라가 상가 임차인에게 원하는 기간만큼 가게를 운영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다. 가게 운영권을 무한정 또는 장기간에 걸쳐 임차인에게 부여하는 것이다. 불가피하게 퇴거를 하게 해야 할 때는 손실보상을 한다. 상가를 소유한 사람에게 거의 전권을 부여하고 임차인에게는 오랫동안 무권리 상태에 머물게 했고 지금도 권리가 미약한 상태에 있는 한국과는 하늘과 땅 차이다.

앞으로 재개발 재건축을 빌미로 임차상인의 삶터를 빼앗는 제도를 폐지하고 재개발 재건축 때 임차상인이 새 건물에서 계속 장사할 수 있는 ‘계속영업권’을 보장해야 한다. 우선적으로 임차계약을 할 수 있는 ‘우선임차권’을 부여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즉시 입법에 나서라.

한국 사회에서 재벌 또는 재벌기업은 특별한 존재이다. 재벌이라는 존재는 전 세계에서 사라졌지만 한국에서만큼은 건재하다. 우선 이 점이 특별하다. 한국 사회에서 재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다. 삼성이 대표적으로 거론되고 있지만 삼성만의 문제는 아니다.

재벌들이 경제권력을 움켜쥐고 한국사회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재벌 대기업이 만들어지기까지는 이 땅의 노동자와 농민, 도시빈민, 시민들의 희생이 있었다. 국민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오늘의 재벌은 존재할 수 없다.

재벌대기업은 국민의 피와 땀, 노력으로 만들어진 만큼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한다. 재벌대기업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중소기업에게 온갖 갑질을 하고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행태를 보여 지탄의 대상이 된지 오래다. 이제는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존재가 돼야 한다. 탐욕을 채우고자 임차인들의 삶터를 빼앗는 존재가 돼서는 안 된다.

한진중공업은 임차상인을 내쫓는 행위가 법률상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말한다. 생존권과 상인들의 주거권은 법률보다 우위에 있다. 주거권과 생존권을 박탈하는 법률은 헌법 위반이고 유엔 인권규정 위반이다. 현행 상가임대차보호법에 따라 명도 집행을 하겠다고 하는 건 법률상 합법일지 몰라도 반인권적 행위이자 생존권 파괴행위이다.

한진중공업과 신세계는 동서울터미널 상인들의 주거권과 생존권을 보호하는 결단을 해야 한다. 만약 이들 상인들을 내쫓는 행위를 하게 되면 사회적 책임을 저버린 기업으로, 반인권적 행위를 자행한 기업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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