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정면)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정면)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삼국시대 ‘금동신발’ 2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그동안 삼국 시대 고분 출토 유물 중 귀걸이, 목걸이, 팔찌 등은 국보나 보물로 상당수 지정됐지만 ‘금동신발’이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 예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6일 문화재청(청장 김현모)은 고창 봉덕리 1호분과 나주 정촌고분에서 출토된 백제 시대 '금동신발' 2건을 각각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고 밝혔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1500여년 전 한국 고대인들의 상장례(喪葬禮) 문화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羅州 丁村古墳 出土 金銅飾履)은 5~6세기 백제 금속공예 기술을 알려주는 중요한 유물이다.

둘 다 각각 한 쌍으로 출토된 이들 금동신발들은 모두 백제 5세기에 제작됐으며, 삼국 시대 고분 출토 금동신발 중 가장 완전한 형태로 발견된 보기 드문 사례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전경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고창 봉덕리 1호분 전경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금동신발은 고구려‧백제‧신라‧가야 등 삼국 시대 유적에서만 발견되는 우리나라 고유의 고대 금속공예품 중 하나다. 비슷한 시기의 중국 유적에서는 찾아보기 힘들고, 일본의 고분에서는 유사한 형태의 신발이 출토된 사례가 있으나, 이는 우리나라에서 전래된 것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전라북도 고창 봉덕리에 위치한 4기의 대형 분구묘(墳丘墓, 분구를 조성한 다음 그 안에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무덤양식) 중 규모가 가장 큰 1호분의 제4호 석실에서 2009년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가 발굴했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은 백제 시대 의례용 금동신발로서, 보기 드물게 원형을 갖추어 출토된 중요한 고대 금속공예품이자, 다양하고 뛰어난 공예기법을 이용해 제작된 것으로, 5세기 중반 백제 미술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충분하다.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삼국 시대 대형 분구묘인 정촌고분의 1호 석실에서 2014년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것이다. 5~6세기 무렵 영산강유역에는 복암리고분군, 정촌고분, 영동리고분군 등 대형 고분이 축조되었는데, 그 중 정촌고분은 1500여 년 전 백제‧마한 문화를 가장 종합적으로 보여주는 고분이면서 도굴 피해를 입지 않아 매장의 원형을 알 수 있어 고고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무덤이다.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출토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나주 정촌고분 금동신발 출토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 2021.2.16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은 고창 봉덕리 금동신발에 비해 조금 늦은 5세기 후반 경에 제작돼 6세기 무령왕릉 출토 금동신발로 이어지는 과도기적 단계를 보여주는 공예품으로서, 5~6세기 백제의 사상과 미술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작품이다.

‘고창 봉덕리 1호분 출토 금동신발’과 ‘나주 정촌고분 출토 금동신발’ 2종은 국내 최초 원형 그대로 발굴된 유물이라는 점에서 고고학과 역사적으로 의미가 크다. 또한 같은 시기 중국이나 고구려, 신라의 미술품과 비교하여 문양의 기원과 변천, 상징적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는 점, 지금까지 알려진 삼국 시대 금동신발과 비교하여 백제 공예문화의 독자성을 밝힐 수 있는 원천유물이라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 또한 매우 높다고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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