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넷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이 공동 개최한 ‘망 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10년’ 토론회. (제공: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오픈넷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이 공동 개최한 ‘망 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10년’ 토론회. (제공: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부,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제정

전문가 “망중립성 저해” 한목소리

[천지일보=손지하 기자] ‘망 중립성’ ‘망 사용료’ 등 망(網)을 둘러싼 이슈가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정부가 제시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이 도리어 망 중립성을 저해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망 중립성’은 인터넷접속서비스제공사업자(ISP)가 네트워크를 통해 전송되는 트래픽의 내용, 유형, 단말기기 등과 관계없이 차별·차단하지 않고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는 개방적이고 공정한 인터넷 이용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용자가 합법적인 콘텐츠, 애플리케이션, 서비스 및 망에 위해가 되지 않는 기기 또는 장치를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기 위한 조치다.

지난 27일 ㈔오픈넷은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과 ‘망 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10년’ 토론회를 개최했다. 토론회에서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가 제시한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대한 전문가들의 지적이 이어졌다.

㈔오픈넷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이 공동 개최한 ‘망 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10년’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동영상 캡처)
㈔오픈넷과 더불어민주당 윤영찬 의원실이 공동 개최한 ‘망 중립성과 새로운 인터넷 10년’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출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동영상 캡처)

◆‘망 중립성’ 해치는 특수 서비스?

지난달 과기정통부는 해외(EU, 미국)와 같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특수 서비스’ 개념을 도입했다. 특수 서비스는 특정한 이용자만을 대상으로 일정 품질 수준(속도, 지연수준 등)을 보장해 특정 용도로 제공하는 서비스다. 인터넷접속 서비스와 물리적·논리적으로 구분된 별도의 네트워크를 통해 제공된다. 인터넷 이용의 공정성을 추구하는 망 중립성과는 상반되는 내용이다.

과기정통부는 특수 서비스 개념 도입으로 신규 융합 서비스 제공이 일정한 요건 아래에서 가능해져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될 것으로 예상했지만 전문가들은 ‘법이 모호하다’고 입을 모았다.

과기정통부가 제시한 특수 서비스 제공조건은 이렇다. ISP는 특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일반 이용자가 이용하는 인터넷의 품질을 적정수준으로 유지해야 한다. 또한 망을 지속적으로 고도화해야 한다. 아울러 특수 서비스를 망 중립성 원칙 회피 목적으로 제공할 수 없다.

문제는 ‘적정 수준’이라는 말에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특수 서비스와 관련해 일반 인터넷 서비스의 ‘품질 저하 금지’를 명시한 바 있다. 반면 한국의 가이드라인은 ‘적정 수준을 유지하되 적정 수준은 기술 발전에 따라 변화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자의적 해석이 들어갈 여지가 상당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은 뭔가 합리적인 트래픽 차별이 가능한 것처럼 이해할 수밖에 없는 내용으로 구성돼 있다”고 비판했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센터 대표는 “현장에 이미 특수 서비스가 다 도입된 후에 사후적으로 개념 정립을 하면 문제가 된다”며 “서비스 출시 전에 특수 서비스 구별 기준을 명확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응준 법무법인 유미 변호사는 “올해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의 핵심은 특수 서비스 제공 요건 강화에 있음에도 법률적으로 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건 문제”라고 꼬집었다.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 동영상 캡처)
박경신 오픈넷 이사(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동영상 캡처)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부터 잘못됐다”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 제정에 이용자들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았다는 문제점도 나왔다.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특수 서비스의 정의를 분명하게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을 가이드라인 TF에 제시했으나 배제됐다”고 밝혔다.

오 대표도 “가이드라인 제정 과정에서 망 중립성 연구반이 운영됐는데 이용자, 시민단체는 참여할 수 없었다”며 “정책을 만들 때 이해당사자 참여 속에서 이뤄져야 수용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에 김남철 과기정통부 통신경쟁정책과장은 “콘텐츠사업자(CP)와 ISP 간 오랜 갈등이 있기 때문에 협의체에서 합의 도출이 힘들어 적극적으로 논의하면서 결론을 도출했다”며 “특수 서비스는 근본적으로 EU와 같은 개념이다. 부족한 점이 있다면 앞으로 해설서를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히 하고 보완할 점은 계속 보완하겠다”고 답했다.

넷플릭스 로고와 SK브로드밴드 로고. (제공: 각 사)
넷플릭스 로고와 SK브로드밴드 로고. (제공: 각 사)

접속료와 전송료… 망 사용료 내야 하나?

한편 망 중립성 가이드라인에 인터넷 서비스 기업이 통신사에 관행적으로 내는 망 이용료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겨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박경신 이사는 “발신자 종량제 방식으로서의 망 이용료를 금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미국과 유럽의 경우 ‘접속료’는 허용하되 트래픽에 따라 ISP에 돈을 내는 발신자 종량제 방식의 망 이용료에 대해선 차단 금지 조항이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고 지적했다.

접속료는 CP가 ISP에 직접적으로 접속을 하면서 지불하는 비용이다. 전송료는 CP가 내보낸 데이터가 ISP의 망을 지날 때 내야 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해외에서는 접속료는 CP와 ISP의 협상에 맡기지만 전송료는 별도로 받을 수 없게 하고 있다. 이 개념은 ‘망 사용료’와 관련해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 사이에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서 넷플릭스가 근거로 삼는 내용이다.

넷플릭스는 최근 진행된 변론에서 데이터 전송 단계에서 넷플릭스 캐시서버를 일컫는 OCA에서 일본과 홍콩의 ISP까지 연결된 지점은 접속에 해당하고 일본과 홍콩의 ISP에서 SK브로드밴드까지의 구간은 전송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일본과 홍콩의 ISP에는 접속료를 납부하지만 SK브로드밴드에는 비용을 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김남철 통신경쟁정책과장은 “미국은 구글·아마존 등 빅테크 기업이 ISP보다 더 크거나 제휴 상대로 인정받는데 우리는 아직 대형 CP라고 해도 네트워크 사용에 있어 대등하거나 우월한 단계로 가진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ISP가 엄청나게 많고 상당히 자유로운 경쟁 시장인데 우리나라는 3개 업체의 독과점 구조로 가고 있다”며 “콘텐츠 사업자의 자유로운 네트워크 이용에 대해 더욱 적극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건물. (제공: 과기정통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건물. (제공: 과기정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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