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지난 20일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 A씨(30)의 영정과 숙소 사진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지난 20일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 A씨(30)의 영정과 숙소 사진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이주노동자70%, 컨테이너·비닐하우스에 거주

비닐하우스, 화재 위험성 높고 유독가스 배출

“집다운 집 제공해 이주노동자 인권보장해야”

[천지일보=김누리 기자] 이주노동자가 열악한 주거 환경 속에서 사망한 사건이 발생해 논란인 가운데 정부가 대책을 마련했지만 주거 환경 개선엔 명확한 한계가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는 18일 천지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비닐하우스를 숙소로 제공하는 농가에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내주지 않겠다는 정부의 대책은 신규 이주노동자에 대해서만 적용돼 한계가 있다”고 비판했다.

이미 고용된 이주노동자에게는 적용되지 않아 열악한 주거 문제가 여전히 방치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사회적 파장 커지고 나서야 개선안 마련


먼저 정부가 대책을 마련한 배경에는 경기도 포천 이주노동자 사망 사건이 있다.

지난달 20일 경기도 포천에서 이주노동자 속헹(30, 여)씨가 비닐하우스 내 가설건축물(숙소)에서 사망했다. 영하 20도에 육박하는 강추위 속에도 속헹씨가 머물던 비닐하우스는 난방장치조차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포천 경찰서는 사건 발생 4일 후 간경화에 의한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주노동자센터와 인권단체 등은 “비닐하우스 숙소에선 몸을 제대로 회복할 수 없다”며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해서 (주거 문제의)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사회적 파장이 커지자 정부는 지난 6일 이주노동자 주거 환경 개선안을 내놓았다. 개선안에는 비닐하우스 내 조립식 패널 등을 숙소로 제공하는 사업주에게는 이주노동자 고용허가를 금지하도록 하는 규정이 담겼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지난 20일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 A씨(30)의 영정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가 지난 20일 포천시 일동면의 한 농장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 A씨(30)의 영정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가설건축물 대다수, 가연성 소재


하지만 이러한 개선안은 이미 고용된 이주노동자들에게는 적용되지 않는 한계점이 있다. 다만 본인 희망에 따라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는 것뿐이다. 결과적으로 기존 이주노동자들이 살고 있는 숙소는 개선하지 않아도 법적인 제재를 받지 않는다.

문제는 기존 숙소 대부분이 화재에 취약한 조립식 패널과 비닐하우스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지난해 9~11월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이주노동자 38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농어업 분야 이주노동자의 70%는 컨테이너·비닐하우스 등 가설건축물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주택에 사는 이주노동자는 25%에 그쳤다.

이주노동자가 숙소로 사용하는 가설건축물은 조립식 패널(38.7%)이 제일 많았고 비닐하우스 내 시설(17.6%), 컨테이너(8.2%) 순으로 집계됐다. 또한 소화기·화재경보가 없는 곳도 있어 화재 위험에 취약했다.

조립식 패널의 경우 스티로폼(EPS), 우레탄폼 등으로 구성돼 있다. 비닐하우스는 폴리에틸렌(PE) 필름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 재료들은 불이 붙으면 순식간에 번지고 몇 모금만 들이마셔도 신경·호흡계에 치명적인 손상을 주는 유독가스를 배출하는 특성이 있다.

실례로 지난 1일 인하대 용현캠퍼스 4호관에 발생한 화재가 있다. 4층 공과대학 연구실에서 발생한 불은 연구실 내부벽을 타고 번져 985.12㎡를 태우고 2시간 뒤에서야 진화됐다. 연구실 내부벽의 주된 소재는 조립식 패널이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화재에 안전한 구조로 이뤄진 건물에 비해 비닐과 조립식 패널은 화재 위험성이 몇 십 배 높다”며 “(화재발생 시) 비닐하우스 안에 있다면 유독가스로 인해 매우 위험하다”고 밝혔다.

[천지일보 =이성애 기자] 21일 12시 40분 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화원 비닐하우스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해 진화에 나서고 있다.ⓒ천지일보 2020.12.21
[천지일보 =이성애 기자] 21일 12시 40분 쯤 서울시 서초구 양재동 화원 비닐하우스에서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불이 나 소방차가 출동해 진화에 나서고 있다.ⓒ천지일보 2020.12.21

◆“농지에 조립식 주택건축 허가해야”


농지 근처에 가설건축물을 지어야 일의 능률을 높일 수 있는 농업상 특성을 정책에 반영해 농지에 조립식 주택건축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최 대표는 “농업 특성상 농지 근처에 가설건축물을 지을 수밖에 없다”며 “가설건축물로 이뤄진 임시숙소가 없으면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읍내에 거주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교통편, 시간 등의 면에서 효율성이 떨어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임야나 농지 등에도 주택을 지을 수 있도록 법적으로 허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숙소다운 숙소, 집다운 집을 지어 이주노동자의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지난 20일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의 영정사진과 숙소 사진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이주노동자 기숙사 산재사망 대책위원회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청와대분수대 앞에서 열린 ‘여성 이주노동자 비닐하우스 기숙사 산재사망 진상규명 및 철저한 대책 마련 촉구 기자회견’에서 지난 20일 사망한 캄보디아 국적 여성 이주노동자의 영정사진과 숙소 사진을 들고 있다. ⓒ천지일보 202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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