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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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10년 전인 1911년 1월 13일 정오 이범진 대한제국 주러시아 공사가 60세 나이에 망국의 한을 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자택에서 목을 매어 자결했다. 1899년 러시아에 부임한 그는 일본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하고 1905년 11월 대한제국과 일본 간에 을사늑약이 체결돼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뺏기고 러시아 내 대한제국 공관이 폐쇄됐음에도 임지를 떠나지 않고 러시아 정부를 상대로 일본의 강압적 조치에 항의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어 그는 고종 황제의 헤이그 만국평화회의에의 밀사(이상설, 이준, 이위종) 파견에서 역할을 수행했으며, 연해주 동포들의 독립운동단체인 동의회를 지원했다.

당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함께 살고 있던 그의 아들 이위종은 통역으로 밀사단에 합류해 헤이그 현지에서 을사늑약의 부당함을 각국 언론에 설득력 있게 호소했다. 이범진 공사는 고종 황제 앞 유서에서  “우리 나라 조선은 죽었습니다. 폐하께서는 모든 권리를 빼앗기셨습니다. 소인은 적에게 복수할 수도, 적을 응징할 수도 없는 무력한 상황에 처해 있고 자살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소인은 오늘 목숨을 끊으렵니다”라고 했다. 망국의 외교관이 느끼는 비통함과 절망감이 절절한 유언이었다.

그는 고종의 소위 아관파천 시기에 내각을 이끈 친러 인사로서 대한제국의 독립을 보전하는 데 러시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하고 주러시아 공사로서 대한제국과 러시아의 관계를 강화하고 대한제국과 관련한 문제에 있어 러시아의 역할과 비중을 높이는 데 힘썼다. 그는 러일 전쟁에서 러시아가 패배한 이후에도 그러한 입장을 지켜나갔다. 그러한 입장에서 그는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일본과 결코 타협하지 않는 일본의 적이었다. 일본은 1904년 2월 러일 전쟁 발발 직후 대한제국 정부에 친러 인사인 그를 소환할 것을 요구해 대한제국 정부는 9월 그를 면직시켰다. 하지만 그는 고종황제의 밀지에 따라 귀국하지 않았으며, 이에 따라 주러시아 일본 공사관은 그가 귀국하도록 여러 방법을 시도했으나 결국 실패했다.

1906년 초 공사관의 공식 폐쇄 이후 그의 어려운 생활에 러시아 황제와 정부의 후의는 큰 도움이 됐다. 결국 그의 유해는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러시아 땅에 묻혔다. 2002년 7월 한·러 친선 특급열차 행사(블라디보스토크- 상트페테르부르크)시 마무리 프로그램으로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우스펜스키 공동묘원에서 이범진 공사의 추모비 제막식이 거행됐다. 한러 양국은 그간 함께 이범진 공사 묘소를 찾으려는 노력을 기울였으나 성과를 거두지 못해 매장 추정 묘역에 한국 외교부가 준비해 간 추모비를 세웠다.

이범진 공사는 1876년 개항이후 청나라와 일본이 조선에 대해 보인 태도에 따라 러시아를 덜 위협적인 존재로 이해하고 러시아에 의지하려는 생각을 갖게 된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1894년 청일전쟁에서 이겨 청나라와 조선과의 관계를 끊고 1902년 당시 러시아 견제가 대외정책의 기조였던 영국과 동맹조약을 체결하고 러일전쟁을 통해 러시아 역시 한반도에서 배제시킴으로써 한반도를 둘러싼 열국 간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됐다.

오늘날 한반도 상황은 어떤가? 외세의 지배를 받고 있지는 않지만 민족이 두 개 국가로 분단돼 있어 현재 대한민국의 생존을 위협하는 주적은 일차적으로 북한의 김씨 세습정권이고 외세로 본다면 북한과 동맹관계인 중화인민공화국이다. 그런데 우리 국민 상당수는 과거지향적인 문재인 정부가 오도한 탓인지 일본에 대한 경계심은 과도한 반면 중국에 대해서는 심리적으로 거의 무방비상태인 것 같아 우려를 금할 수가 없다.

중국은 남북한 간에 전쟁에 이르지 않을 정도의 긴장관계가 유지되도록 남북한에 대해 이한제한(以韓制韓) 정책을 펴면서 대한민국을 만만하게 보고 길들이려 하고 있고 현 정부는 이에 순응하고 있지 않은가? 반면에 동맹국인 미국에 대해 정부는 북한과 민족공조를 위해 잘 해보려 하는데 왜 협조하지 않는가 식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러시아가 우리에게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러시아는 주변 나라들 가운데 진정으로 남북통일에 대해 호의적인 유일한 나라가 아닐까? 착한 외세를 상정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러시아의 국익에 비추어 그렇다는 이야기이다. 또한 우리의 잠재적 적인 중국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으로서 미국과 함께 러시아를 고려할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이범진 공사는 나라가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고민하고 고민해 러시아를 원군으로 삼은 것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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