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

이복희

 

큰 눈 오는 저녁이면

나는 가로등 아래

배경으로 서 있고 싶다.

눈물보다 더 아린 눈물 젖어서

행여 떠나간 옛사람

그림자 찾아 이곳에 들르면

묻혀버린 배경 찾아 헤매이다

밤새도록 길 잃어

오래오래 머물도록!

 

[시평]

눈이 펑펑 내리는 밤에, 캄캄한 밤하늘을 메우듯이 쏟아지는 눈송이를 바라다보면, 그 포근함과 함께 우리를 미지의 머나먼 세계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먼 잊어버렸던 기억을 다시 불러내고, 그 기억을 우리의 곁으로 데리고 오곤 한다. 캄캄한 배경으로 서 있는 가로등, 그 불빛 아래로만 몰려드는 함박눈 송이 마냥, 추억은 우리의 곁으로, 곁으로 꾸역꾸역 모여든다.

그래서 시인은 ‘큰 눈 오는 저녁이면 가로등 아래 그 배경으로 서 있고 싶다’라고 말한다. 펑펑 내리는 눈발 속, 주위를 환히 밝히고 서 있는 가로등, 그 가로등을 배경으로 눈물보다 더 아린 눈물에 젖어서, 행여 멀리, 멀리 떠나간 옛사랑이 그 가로등 불빛 아래로 찾아 돌아오지나 않을까, 눈은 이런 기대를 우리에게 준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돌아오지 않는 추억을 마음속에 담고 산다. 돌아오지 않으므로, 아니 돌아올 수 없음으로 그 추억은 가슴속 저 깊은 곳에 숨겨져 있다. 그러다가 이렇듯 눈이라도 펑펑 내리는 날이면, 그 숨어 있던 추억이 나도 모르게 고개를 내민다. 어깨 위 눈을 수북이 맞으며, 쏟아지는 눈발 사이로 어른어른 보일 듯 말 듯, 서성이고 있을 그런 사람 생각이 난다. 펑펑 큰 눈이 내리는 캄캄한 한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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