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서 발달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던 어머니 김씨(60세)가 한 다세대주택에서 사망한 채 발견됐다. 국과수에 따르면 사망 시점은 5개월 전이고 사망 원인은 질병이다. 한 사회복지사가 길 가다가 노숙하는 청년(36세)에게 사정을 물어보고 나서야 어머니의 사망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사람이 죽고 나서 며칠도 아니고 무려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하고 넘어가는 사회가 우리 사회다. 어쩌다가 이리 됐나?

한국을 수식하는 말은 많다.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 국방력 세계 7위, 무역 1조 달러, G20, K방역, K팝… 수도 없이 많다. 힘들고 고통스런 삶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지표도 수없이 많다. 산재사망률, 자살률, 노인 빈곤율, 저출산율이 세계 1위이다. 양극화는 세계 최고 수준이고 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방배동 모자 사건’은 선진국 소리를 듣는 한국 사회가 얼마나 비인간적인 사회인가 하는 걸 보여주는 지표이다. 결코 우연히 생긴 사건이 아니다. 어머니는 정부가 자랑하는 ‘수급권자 200만명’에 포함돼 있었지만 주거급여를 받는 것 말고 지원받는 게 없었다. 주거급여는 임대인의 손으로 고스란히 넘어가는 돈이다. 생활하는데 쓸 안정된 소득이 없었다. 공공근로를 하기도 했는데 공공 근로는 일년 내내 계속할 수가 없다. 대개 6개월 하면 6개월 쉬어야 한다. 그 뒤 신청해도 계속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청한다고 무조건 다 일할 기회가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가 생계급여와 의료급여를 받지 못하고 주거급여만 받은 이유는 무엇일까? 악명 높은 부양의무제 때문이다. 주거급여도 부양의무제가 폐지된 2018년 10월이 돼서야 받을 수 있었다. 직계 혈족 또는 배우자의 재산과 소득이 일정액 이상이면 부양을 한다고 가정하고 지원을 금지하는 나쁜 제도가 부양의무제다.

왕래조차 없고 실제 부양하지 않는 경우도, 부양할 여건이 안 되는 경우도, 부양할 의향이 없는 경우도 부양한다고 가정하고 기초생활비를 지원하지 않는 거다.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아간 건 바로 이 부양의무제 때문이고 비인간적인 부양의무제를 실행한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한국 정부와 국회 그리고 사법부 때문이다.

자신들의 지역구 예산 따는 데는 영혼까지 바치면서도 의지할 데 없는 도시빈민의 삶은 외면하는 존재가 국회의원이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업 예산은 혼신의 힘을 다해 확보하면서도 외롭고 고달픈 국민의 삶은 외면하는 존재가 거대 정당들이다. 정치구조가 바뀌지 않고는 바뀔 수 없는 문제가 부양의무제다. 빈곤문제 또한 마찬가지다.

같은 ‘생활고 참사’일지라도 크게 여론화되는 경우가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가 있다. 정부와 지자체, 정당과 정치인은 사건이 크게 여론화될 때만 반응을 한다. 반응을 하는 경우도 체면치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관료들은 물론 정치인과 정당 지도부도 근본적인 대책을 내는 건 처음부터 관심이 없다. 그러니 똑같은 유형의 ‘참사’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방배동 모자 사건’을 두고 행정부서와 지자체가 제 역할을 못해 발생했다고 말하는 언론 매체가 많다. 단전, 단가스가 이루어지고 수도료가 체납되고 건보료가 11년에 걸쳐 500만원 넘게 체납된 가구임에도 점검되지 않은 건 분명 문제가 있다. 하지만 본질적인 것은 그게 아니다. 빈곤으로 허덕이고 장애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체제가 갖추어지지 않은 현실이 문제다. 이제라도 국가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단 한 사람도 생활고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 하고 장애인과 장애인 세대가 불편 없이, 불안 없이 온전한 삶을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부양의무제 폐지부터 시작해야 한다.

아들은 발달장애가 있었지만 등록조차 할 수 없었다. 그냥 방치돼 있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는 “빈곤뿐만 아니라 장애인에 대한 1차적 책임을 가족에게 전가하는 전형적인 우리사회의 사회복지의 민낯을 드러낸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정부와 국회, 사법부가 깊이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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