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연말까지 처리하려고 했던 입법계획을 모두 성사시켰다. 범여권을 합쳐 국회의석 180여석의 힘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 것이다. 막바지 걸림돌이던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를 의석수로 밀어붙여 강제종료시키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개정안을 비롯해 국정원법·경찰법 개정안, 공정경제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통과시켰으며, 마지막으로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대북전단살포금지법)마저 해결한 뒤 승리의 축배를 들었다. 여당 입장에서는 묵은 체증이 내려갔으니 축배를 들고서 자축할 만도하다.

여당에서는 공수처장 후보추천위원회의 ‘야당 비토권’ 삭제 및 공수처 검사의 요건을 완화시킨 공수처법개정안이 통과되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 등 지도부는 물론, 정부 인사들도 환호를 올렸다. 심지어 청와대 민정비서관까지 나서서 소회를 밝히면서 SNS에 글을 올렸는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해 “멸문지화 수준의 고통”을 겪었다며, 조 전 장관이 검찰개혁에 나섰기 때문에 장관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 검찰 수사가 이어졌다는 개인적 소견을 알렸다.

국회가 입법부인 만큼 국민을 위한 법 제정이나 개정에 여야가 따로 없다. 하지만 법 제·개정 취지나 내용에서 이견이 있을 경우 여야가 충분히 협의해 공통분모를 최대화한 내용으로 입법해야 하겠지만 이번 공수처법개정안과 같이 제1야당이 거부한다고 하여 의원수를 앞세워 법개정안에 착수하고 국민의힘 필리버스터도 무력화시키면서 여권 단독으로 법 개정하는 것은 국회제도상 그 본질에도 맞지 않는다 할 것이다. 다수가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주는 것이 의회정신이거늘 거대여당에서는 180여석의 의회권력을 믿고 힘으로 밀어붙이는 행동을 취했다.

여당이 내세운 정당성, 즉 국민을 위한 것이고 개혁법안에는 ‘국민 염원이 담겼다’는 이유로 무더기 통과시켰지만 국민여론은 그게 아니었다. 여당의 밀어붙이기식 법 통과가 잘한 것이라면 국민들이 충분히 호응하면서 야당을 질책했을 테지만 여론은 부정적이다. 공수처법이 통과된 후 여론조사기관이 의견을 물은 결과 ‘잘못된 일’이라 답한 응답자는 54.2%, ‘잘된 일’이라는 응답자는 39.6%에 그쳤다. 또 그 기간 중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 조사에서는 36.7%로 나타나 2주 연속 30%대에 머무른 점 등은 오용된 권력을 탓하고 있는 게 아닌가. 민주당은 입법 승리에 도취해 만용 부릴 때가 아니다. 권력 본류에 서서 득세를 자랑하며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다할 수 있다고 입법 무기를 휘두를 것이 아니라 국민 앞에 더 겸손해져야 한다. 여당은 분명 기억해야 한다. 수적 우세를 믿고 의회 민주주의에 역행하고, 국민여론을 무시한다면 큰코다칠 수 있다. 그래서 지난 4월 17일 ‘당 4.15 총선 선대위 해단식’에서 당시 이해찬 당 대표가 강조했던, 과거의 “열린우리당 아픔을 깊이 반성해야 한다”는 말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한다. 수적 세력만 믿고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는 착각에 빠진다면 결과는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것은 바로 ‘영원한 권력은 없다’는 역사의 지엄한 교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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