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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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주장을 귀담아듣지 않는 것’을 마이동풍’이라고 한다. 요즈음 문재인 정권에 대한 풍자 언어로 등장했다. 위정자들이 가장 중요시해야 할 사안이 민의(民意)인데 이런 소리를 듣고 있으니 나라의 앞날이 어둡기만 하다.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당나라 시인 이백이 작품 안에 이를 인용하고부터라고 한다. 당 현종 때 무신 실세들이 작은 공을 세운 후에 황제에게 총애를 받으면서 오만방자하게 굴었다. 문인들이 멋진 시를 지어도 관심을 끌지 못했다. 이백이 저자거리에서 매일 술에 떡이 돼 귀가한 것도 이런 소외감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 시인이 ‘추운 밤에 홀로 술잔을 기울이며 회포를 읊다(寒夜獨酌有懷)’라는 시를 보냈다. 이백이 답시 안에 이 문구를 인용한 것이다.

‘세상 사람들 이것을 듣고 모두 머리를 내저어(世人聞此皆掉頭)/ 마치 봄바람이 말귀를 스쳐가는 것 같으리(有如東風射馬耳).’

그런데 마이동풍이란 문구가 쓰여진 것은 그 이전부터다. 삼국지 조조 고사에도 이런 표현이 등장한다. 조조가 낙양현 현위(縣尉)로 있을 때였다. 그는 부임하자마자 성문을 보수하고 늦은 밤 민간인의 출입을 규제했다.

‘성문 출입의 법규를 위반한자는 이 몽둥이로 쳐 죽인다’는 경고문까지 붙여놓았다. 성문 좌우에 법을 어기는 자를 응징할 방망이까지 걸어놓았다.

이때 황제의 총애를 받는 건석이라는 환관의 숙부가 밤늦게 성문을 통과했다. 평소 조카의 권세를 등에 업고 거들먹거리던 자였다. 조조는 그를 체포해 몽둥이를 들었다.

“내가 누군데 이렇게 무례하냐. 나는 황제의 총애를 받고 있는 건석의 숙부다. 네 놈이 이러고도 무사할 줄 아느냐.”

강직한 조조는 ‘마이동풍’이었다. 그 자리에서 큰 소리를 치는 건석의 숙부를 몽둥이로 때려 죽였다. 성 안에 이 소문이 퍼지자 엄정하게 법을 집행한 조조에 대한 백성들의 환호성이 터졌다고 한다. 예나 지금이나 관리가 엄정하게 법을 집행하면 인기가 높다.

‘우이독경(牛耳讀經)’도 마이동풍과 비슷한 뜻으로 쓰인 말이다. 소 귀에 대고 경전을 읽어주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데서 어리석고 둔한 사람을 비유한 말이다. 다산 정약용의 속담집 이담속찬(耳談續纂)에 나온다. 홍만종의 ‘순오지’ 등 잡학서에는 ‘우이송경(牛耳誦經)’이라고 돼 있다.

억지를 잘 쓰고 자기 생각만 우기는 사람을 ‘옹고집’이라고 했다.

조선 영·정조 시기에 민간에 등장한 ‘옹고집전’이라는 국문소설의 주인공인데 본래는 판소리에서 나왔다는 기록이 있다. 심술 많고 자신의 주장만 내세우는 옹고집이 수도승의 도술에 걸려 참된 인간으로 개과천선한다는 줄거리다.

문재인 정권은 공수처법, 검찰총장 징계 등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을 강행하고 있다. ‘마이동풍 정권’ ‘우이독경 정권’에다 ‘문고집’이란 비판까지 받는다. 퇴임 후 위기의식을 느끼지 않으면 이런 황당한 정치 프로세스를 감행하지 않았을 게다.

공자는 생전에 스스로 네 가지를 멀리했다. 논어 ‘자한편(子罕編)에 나오는 공자의 ‘자절사(自絶四)’가 그것이다. ‘억측하지 않고(毋意), 미리 단정하지 않고(毋必), 하나만을 고집하지 않고(毋固), 아집이 없었다(毋我).’

마이동풍이나 옹고집으로 정치를 하는 이들을 향한 고언 같다. 요즈음 문 대통령과 집권당 리더들이 음미해야 할 가르침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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