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위정자들과 정부 고위 관료들은 한국이 ‘무엇 무엇이 최고다’ 하면서 한국의 위상을 자랑한다. 요즘은 자랑거리로 K방역을 앞세우고 있고 대통령도 기회만 있으면 강조하고 있다. K방역 예찬 속에 음압병상 부족, 역학조사관 부족, 간호인력 부족은 묻혀 버린다. 하루에 여섯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고 있는 참혹한 현실도 덮어버린다.

자랑할 만한 일을 자랑하는 건 잘못이 아니지만 정권의 업적을 홍보하기 위해 뻥튀기해서 말하거나 실상을 왜곡하는 건 곤란하다. 이 같은 행태 때문에 잘못된 현실이 개선되지 않는다. 실상을 과장 왜곡 은폐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모든 나라는 예외 없이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공존한다. ‘경제대국’이라 자랑하는 우리나라도 어두운 그늘이 곳곳에 널려 있다. 위정자들과 일부 언론은 어두운 사회의 실상을 쉬쉬하면서 숨기거나 모른 체하고 넘어간다. 그렇게 해서는 현실이 바뀌지 않는다. 문제 그 자체보다 실상을 숨기려는 세력이 더 위험한 이유이다.

우리 사회를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문제는 양극화와 불평등, 빈부격차라 할 수 있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다.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는 안전 문제가 바로 그것이다. 안전 문제가 거의 해결된 나라가 있는가 하면 우리나라처럼 꼴찌 수준에 맴돌고 있는 나라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적 구호를 앞세워 집권에 성공했다. 촛불을 든 수천만 시민의 외마디 외침이 ‘사람이 먼저다’였다. 단 여섯 글자에 불과하지만 이 말 속에는 한국사회가 지향해야 할 가치가 담겨 있다. 이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지금까지 한국사회는 사람이 ‘후순위’, 곧 ‘뒷전’에 있었다는 성찰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 속에는 사람보다 기업이 먼저고 사람보다 국가가 먼저인 사회, 생명보다 돈이 먼저고 안전보다 이윤이 먼저인 사회, 사람이 거대한 한국자본주의를 돌리기 위한 부품으로 간주되는 사회에 대한 통렬한 반성이 자리 잡고 있다.

‘사람이 먼저다’라는 정치 구호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시대의 나침판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후보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2022년까지 산재사망사고를 절반 이하로 줄이기를 공약한 것은 시대의 흐름에 정확히 부응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여망을 안고 집권했다. 집권 기간의 3분의 2가 지났지만 일부만 바뀌었을 뿐 바뀐 게 별로 없고 민생과 안전 분야에서는 바뀐 게 거의 없다. 지금 민생은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제자리를 맴돌고 있고 스텔라데이지호 참사 진실규명과 책임 규명 역시 멈춰 있다. 안전 분야에서 변화는 눈에 띄는 게 없다. 산업재해율과 산재 사망률은 그대로다. 질병을 제외한 사망 사고만 조금 줄었을 뿐이다.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산재 사망사고와 중대 재해를 야기한 기업주와 경영자에 대해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하라고 요구한 지 1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영국과 호주, 캐나다는 기업과 법인에 책임을 묻는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산업재해 예방의 전기를 마련했다.

한국은 하청에 재하청, 재하청에 재재하청으로 얽혀 있는 수직적 사회다. 원하청 구조가 견고하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사회에서 사업주와 경영자, 원청과 법인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산재사고와 사망사고는 절대 줄어들어 않는다. 노동시민사회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요구하는 이유이다.

정기국회에서 중대재해법을 처리하지 않고 넘겨 버렸다. 국회에서 여러 날 밤샘 농성을 한 고 김용균 어머니 김미숙씨를 비롯한 피해자 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고 있다. 법 처리가 무산된 가장 큰 책임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회기 동안 대통령이 입법 의지를 밝혔다면 결과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대통령은 지금이라도 중대재해법 제정의 필요성과 긴급성을 제기해 다음 임시국회에서는 법률이 제정되도록 해야 한다.

집권당 대표도 제1야당 대표도 입법을 약속했는데 약속은 헌신짝처럼 버려졌다. 지키지 않을 생각이라면 약속을 하지 말아야 한다. 약속을 안 지키는 정치인이 가장 나쁜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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