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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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게시판에 ‘시무7조’를 올려 40만명이 호응했던 진인(塵人) 조은산. 얼마 전 모 신문에 처음으로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를 해 화제가 됐다. 필자는 조씨의 글을 읽고 해박한 지식과 함축성 있는 문장력, 고사에 대한 이해력에 한국사를 전공했거나 국학분야 연구소에 근무하는 구성원으로 알았다.

한번은 학계의 원로 교수와 식사하는 자리에서 조씨의 글이 화제가 됐는데, 한국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고 봤다. 그러나 언론에 나온 조씨는 아이 둘을 가진 평범한 30대 샐러리맨으로 사무직 종사자였다. 다만 역사소설을 자주 읽는 편이라고 했다.

조씨를 보고 필자는 조선시대 남산골에 살았던 ‘딸깍발이 선비’들이 떠올랐다. 가난했던 이들이 나무 신을 신고 남산을 오르내려 딸그락 소리가 났다고 해서 이 같은 별명이 붙었던 것이다.

이들은 과거에 급제하지 못해 대부분 가난하게 살았다. 그러나 양반이란 긍지와 기개를 버리지 않았다. 평생 책을 읽으며 후학들을 가르치고, 나라에 잘못된 일이 생기면 즉각 임금에게 상소를 올리는 것을 낙으로 삼았다.

강상(綱常) 윤리문제나 억울하게 당하는 백성들을 변명하고, 임금이 잘못하면 시정을 요구했다. 덕망이 큰 임금이 있을 때는 승정원으로 들어오는 선비들의 상소가 산더미처럼 쌓였다는 기록이 있다. 상소가 이처럼 많았던 것은 바로 군주와 백성의 소통 장치인 언로(言路)로 여겨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임금은 상소를 받으면 어떻게 했을까. 지금은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쓰면 비서실에서 걸러 답을 쓰는 것이 상례다. 그런데 조선시대는 임금이 상소를 모두 읽었다고 한다. 정조는 전국에서 오는 상소를 읽느라 수면 시간이 적어 건강까지 해쳤다는 일화가 전한다.

오늘날 대한민국 평범한 지식인 가운데 적극적 주장을 표출하는 이들이 바로 ‘조은산’이 아닐까. 이들은 정치문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어 의식 있는 제2, 제3의 조은산으로 활약하고 있다.

역사지식도 풍부하며 글 솜씨도 문인을 능가하는 이들이 많다. 세계 제1위 인터넷 보유국이 만든 결과다. 비록 청와대 게시판에 글을 쓰지 않아도 블로그나 SNS를 통해 수백만명이 글을 공유하고 있다. 통쾌한 비판과 정의감 넘치는 글이 많다.

이미 우리 사회에 ‘액티브 시니어(Active senior)’라는 용어가 유행한 지 오래 됐다. 50대부터 70대 초반에 이르기까지 자기혁신을 위한 열정적 노력가들이 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신조어다. 스터디 그룹이나 평생 학습원 혹은 대학원, 전문학원 등에서 공부를 다시 시작, 인생 제2모작을 살고 있는 적극적 그룹이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새로운 액티브시대를 살고 있는 다수의 국민을 도외시하면 안 된다. 지금 법무장관의 일탈행위가 헌법과 법률을 어기고 무리수를 씀으로써 검란을 야기한 것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런데도 대통령과 여당 리더들이 법무장관을 옹호하고 일부 의원들은 검찰총장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미 무너진 둑을 호미로 막을 수 있겠는가.

대통령이 국민들을 두려워한다면 법무장관의 오만한 자세를 중지시켜야만 한다. 촛불을 들고 공정을 외친 젊고 착한 시민들의 명령이기도 하다. 윤 총장만 제거하면 모든 것이 묻힐 것이라는 생각을 해서도 안 된다. 많은 국민들이 조은산이고, 검찰들이 모두 헌법을 지키겠다고 선언한 윤석열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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