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스포츠 칼럼니스트·스포츠학 박사 

디에고 마라도나가 한창나이인 60세로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지난주 들으면서 40여년도 더 된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서 자주 읊었던 독일 문학가 안톤 슈낙(1892~1973)의 대표적 수필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의 몇 구절이 생각났다.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 속에 명멸한 구절을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봤다. 

‘날아가는 한 마리의 白鷺(백로), 추수 후의 텅 빈 논과 밭, 술에 취한 여인의 모습, 오뉴월의 장례행렬, 거만한 인간, 바이올린의 G현, 산길에 흩어진 비둘기의 털, 자동차에 앉은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광대, 휴가의 마지막 날, 굶주린 어린 아이의 모습, 철창 안에 보이는 죄인의 창백한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中略) 이 모든 것이 우리를 슬프게 한다.’ 글귀는 오래 전 기억을 바로 생생하게 되살려 놓았다. 

아마도 마라도나의 죽음을 접하면서 필자와 같은 동년배의 많은 이들은 마음속으로 안톤 슈낙이 말했던 것보다 더한 깊은 슬픔과 좌절감을 느꼈을 법하다. 같은 시대를 바람처럼 살다간 마라도나의 삶에 남다른 공감과 함께 연민으로 짙은 향수를 갖기 때문이다. 요즘 젊은 세대는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열광하지만 필자가 청춘이었던 1980~1990년에는 단연 마라도나가 축구의 영웅이었다.

그는 1960년대 펠레, 에우제비오에 이어 1970년대 말 혜성처럼 나타난 세계 축구의 천재였다. 그의 경기를 처음 본 것은 1979년 도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U-20 월드컵 전신) 결승 때로 기억한다. 마라도나는 19세 나이로 이 대회에서 단연 주목을 끌었던 샛별이었다. 6골을 터뜨리며 골든볼을 수상한 마라도나의 경기를 TV 중계를 통해 보면서 “어떻게 저렇게 축구를 잘 하는 선수가 있을까”라며 묘한 매력에 빠져들었다. 

일취월장한 그는 세계 축구를 호령하는 사나이가 됐다. 마라도나를 좋아했던 필자는 모 스포츠 일간지에서 어릴 적 꿈이었던 스포츠 기자가 돼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서 최고의 스타가 된 마라도나의 일거수일투족을 기사로 전했다. 잉글랜드와의 8강전에서 역사적으로 유명한 ‘신의 골’이 탄생하는 것을 봤고, 월드컵 사상 최고의 골로 평가받는 수비수 5명을 제치고 70야드를 돌파해 득점에 성공하는 골 순간도 봤다. 

멕시코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우승으로 이끌며 세계 최고의 선수로 떠오른 마라도나가 당시 세계 축구의 황금시장으로 불리었던 이탈리아 프로축구 나폴리에 진출해 꼴찌팀을 일약 우승으로 이끌었을 때, 필자는 축구기자로 열심히 그의 기사를 전하고 있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준결승전에서 아르헨티나가 이탈리아를 꺾고 결승에 오른 뒤 독일에 아깝게 패한 경기 결과도 당시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하고 예선 탈락한 이회택 감독의 한국 대표팀과 대비해 기사를 쓰기도 했다.

하지만 마라도나가 현역 은퇴한 이후, 그의 존재감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스타로서의 우상이기보다는 마약, 마피아, 미녀를 탐닉하는 ‘악동’의 모습으로 비쳐졌던 것을 못내 아쉬워하기도 했다. 그의 선수 생활이 화려했던 만큼 그의 어두운 생활은 언론에 자주 대비되는 모습으로 보도됐다. 한때 좋아했던 그의 양면성을 보고 많은 이들은 실망을 했다. 필자도 물론 그랬다. 

그의 삶은 자유스러운 꿈을 좇아 살다간 한 인간의 이상향을 보는 것 같았다. 마라도나는 화려하게 축구를 해 많은 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했고, 끝내 어둠 속에서 좌절하다가 살다간 영혼이 됐다. 한 시대를 축구와 함께 한 그의 영원한 안식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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