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의 힘

백무산(1955 ~  )

기차를 세우는 힘,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린다

시간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미래로 간다

무엇을 하지 않을 자유, 그로 인해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안다

무엇이 되지 않을 자유, 그 힘으로 나는 내가 된다

세상을 멈추는 힘, 그 힘으로 우리는 달린다

정지에 이르렀을 때, 우리가 달리는 이유를 안다

씨앗처럼 정지하라, 꽃은 멈춤의 힘으로 피어난다

 

[시평]

세상의 모든 것, 동(動)이 있기 때문에 정(靜)이 있는 것이요, 허(虛)가 있기 때문에 영(盈)이 있는 것이요, 멈춤이 있기 때문에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움직임이란 없는 것이고, 영원한 정지 또한 없는 것이다. 그래서 어찌 보면 역설 같지만, 세우는 그 힘으로 기차는 달리는 것이요, 멈추는 시간의 그 힘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미래로 갈 수 있는 것이다.

멈출 줄 아는 자만이 진정으로 달릴 수 있는 사람이고, 달릴 줄 아는 사람이라야 멈출 줄도 아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흔히 달리는 힘만 알지, 멈춤이 지닌 힘의 진정성을 모른다. 그래서 권력을 지닌 자는 계속해서 그 권력의 힘을 달려 나갈 줄만 알지, 한번쯤 멈춰 서서 뒤돌아볼 줄을 모른다. 그저 앞만 보고 달리기만 한다.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쉬지 않고 달려만 왔다. 일제 36년이라는 혹독함이 끝났는가 했더니, 나라는 두 동강이 나고, 해방된 지 5년이 되지를 않아 같은 민족끼리 싸워야 하는 비극적인 전쟁을 겪었다. 그러므로 당시 우리나라는 이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의 하나였다. 그러나 불과 반세기가 지나고 나서 우리나라는 여느 나라와도 어깨를 나란히 하는 나라가 됐을 뿐만 아니라, 남의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남에게 원조를 주는 나라로 성장했다.

이런 나라가 되기 위해 우리는 앞만 보고 달려만 왔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남에 대한 배려가 아닌가 생각한다. 달려만 오느냐고, 한번쯤 멈춰 서서 상대를 배려하거나,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리라. 그래서 이제는 달리는 것을 한번쯤 멈추고 뒤돌아보는 자세 또한 필요하다고 하겠다. 씨앗처럼 정지해, 그 힘으로 피어나는 꽃, 그 멈춤의 힘을 지니고 진정한 배려와 존중의 꽃, 우리 삶 속에서 피어나기를 오늘 우리 모두는 마음으로 기원하고 있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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