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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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습해 오는 엄동설한처럼 북한 체제의 위기도 한 발자국씩 다가오고 있다. 인민생활의 고달픔이 아비규환으로 넘쳐나는 가운데 최근에는 노동당의 금융정책이 총살과 숙청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과 UN의 대북제재가 효력을 내는 가운데 워싱턴에 등장한 바이든 시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정은 정권에게는 고통이다. “정책은커녕 대책도 없다”는 인민들의 비판 속에 북한의 무슨 정책인들 제대로 된 효력이 있으랴만 최근 북한이 극심한 경제난 속에서 물가를 안정시키고 내수를 일으키기 위해 원화 절상 정책을 단행한 영향으로 금융정책이 갈팡질팡하고 있다.

28일 일본의 북한 전문매체 아시아프레스에 따르면 달러 대비 북한 원화 환율은 지난달 23일 달러당 8170원에서, 이달 12일 6500원으로 20.4% 내렸다. 위안화 대비 북한 원화 환율도 같은 기간 위안당 1225원에서 890원으로 27.3% 하락했다. 원화 환율이 하락했다는 것은 그만큼 원화 가치가 상승했다는 의미다. 북한 원화 가치가 단기간에 급상승한 원인으로는 북한 당국의 외화 사용금지 조처가 꼽힌다. 이런 가운데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은 지난달 29일 페이스북을 통해 “최근 평양 소매점에서 달러화나 전자 외화 선불카드인 나래카드를 받지 않고 대금을 원화로 요구한다”고 전했다.

평양 외국인 전용 상점과 대동강 외교관클럽에서조차 달러와 나래카드를 받지 않고, 환전소를 따로 설치해 외국인도 원화만 쓰도록 한 것이다. 달러를 팔려는 사람이 늘어나니 원화 가치가 올라갈 수밖에 없다. 우리 정보위원회 관계자도 국가정보원 보고 내용을 전하며 “북한 돈 가치가 오른 이유는 최근 몇 달 동안 북한당국의 달러 사용 금지 조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북한이 달러 사용을 틀어막은 것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수해, 대북제재 장기화라는 ‘삼중고’ 속에서 경제를 살리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특히 내년 1월 눈앞으로 다가온 노동당 제8차 대회에서 뭔가 새로운 경제정책을 내놓으려다 보니 지금부터 금융제도부터 손질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북한 당국이 내수 진작을 위해 시장에서의 달러 사용을 제한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19로 대외 무역이 막힌 상황에서 북한 내에서도 달러를 쓸 수 없게 해 주민들이 서둘러 달러를 원화로 바꿔 소비하도록 유도하겠다는 취지가 아니겠느냐는 분석도 나온다. 물가 안정을 위해 원화 절상을 단행했다는 관측 또한 있다. 통상 화폐가치가 오르면 물가 수준은 떨어진다. 우리 국정원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중국에서의 물자 반입이 크게 줄면서 설탕과 조미료 등 식료품값이 치솟았다. 특히 1만 6500원 선이었던 조미료는 7만 5900원으로, 연초 1㎏에 6000원대였던 설탕은 2만 7800원으로 뛴 것으로 파악됐다. 통일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은 “환율이 단기간에 1000원씩 평가절상된 것은 정책 개입의 결과로 보인다”며 “물가에 상한 가격을 강하게 두고 있다는 보도가 있었고 원화절상 역시 물가 안정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환율 급변동이 야기한 시장의 혼란이다. 외화 금지령으로 달러가 폭락하자 달러를 보유한 주민들의 불만이 커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북한은 당국에 돌아올 비난의 화살을 피하고자 평양의 거물급 환전상을 희생양으로 삼아 처형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북한은 10월 말 노동당 경제정책부장 오 아무개를 처형했다는 소문도 평양에 파다하다. 물론 노동당의 강제조치에도 불구하고 원화 가치는 최근 소폭 하락세로 돌아섰다. 아시아프레스에서 조사한 북한의 원/달러 환율은 11월 27일 기준 7200원으로, 약 한 달 만에 6000원대를 벗어났다. 북한이 가장 절실한 외부 전문가는 금융전문가라는 분석은 정확한 것 같다. 제대로 된 금융정책과 금융전문가가 존재하지 않다 보니 통화정책이 흔들리면 관계기관 간부들을 처형하는 것이 대책의 전부가 아닌가. 아마도 김정은 정권은 내년 1월 노동당 제8차 당대회를 전후해 화폐개혁을 단행할지도 모른다. 그 화폐개혁이 가져다줄 공포는 2009년을 훨씬 능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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