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청춘 마리안느

이세룡(1947~2020)

보리빵 한 개를 삼등분하면 하루가 지나갔다.

 

마리안느의 단골 미장원 앞에서

구두를 닦았다.

그리움은 먹은 것도 없이

밤마다 책갈피에 코피를 쏟고,

마리안느가 자나갈 적마다

괜히 얼굴 붉히던 나의 청춘

 

사진 속의 얼굴은 지금도 수염이 자라지 않는다.

 

[시평]

이세룡이 세상을 떠났다는 부음이 들려왔다. 매우 간결하면서 읽는 이로 하여금 새로운 생각을 하게 하는, 유니크한 시를 쓰던 이세룡. 젊은 나이에 뜻하지 않은 병마로 전신마비가 돼 힘든 삶을 영위하던 시인 이세룡. 그는 1947년생이니까, 이제 막 노년으로 접어가는 70대 중반의 나이이다. 부음을 듣고 그가 남긴 책들을 다시 꺼내 봤다. ‘내 인생의 절반은 영등포에서 배웠다’라는 제목의 산문집이 눈에 띄었다. 영등포에서 보낸 어린 시절 그의 고단한 삶이 절절히 담겨 있는 산문집이다.

이 산문들 중에 인용된 ‘나의 청춘 마리안느’라는 시를 한 편 읽게 됐다. 마리안느는 이세룡이의 말에 의하면 프랑스의 거장 줄리앙 뒤비비에의 ‘나의 청춘 마리안느’라는 영화에서 빌려온 이름이다. 보리빵을 삼등분하면 하루가 지나가는 가난한 시절, 같은 동네에 사는 한 소녀에게 그만 마음을 뺏기고 말았다. 그래서 그녀가 다니는 미장원 앞에서 구두를 닦기도 하고, 그녀의 주변을 서성거렸다. 그녀에 대한 연정은 밤마다 코피로 책갈피를 적실 정도로 강렬했다.

그 시절, 참으로 순수했던 시절, 삶도 사랑도 또 모든 것이 순수했던 시절. 그래서 그 시절의 사진은 지금도 수염이 자라지를 않는다. 순수했던 모습 그대로이다. 코피를 쏟을 만큼의 순수의 열정 그대로를 지닌 이세룡, 그는 나이가 일흔이 넘었어도 그 모습 그대로였을 것이다. 마리안느를 생각하며 코피를 흘리던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세상의 자질구레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문득 쓰러지던 그 시절의 모습, 이세룡은 그 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그대로 지녔을 것이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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