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 듯 오시는 이

한분순(1944 ~ )

 

저물 듯 오시는 이 늘 섧은 눈빛이네

엉겅퀴 풀어놓고 시름으로 지새우는 밤은

봄바람 무너지는 소리 하나 깔리네.

 

[시평]

저물 듯 오시는 분, 그 분은 어떤 분일까. 분주했던 하루가 어느덧 뉘엿뉘엿 저물어 가는 저녁을 맞으면, 왠지 낮 동안 부산했던 마음마저도 차분해진다. 중천에 높이 떠 있던 태양도 서산마루에 걸려 빛 고운 하늘이 되어가고, 그래서 슬픈 눈빛을 띤 채 서서히 그 위용을 감추어가고 있다.

어둠이 무슨 점령군마냥 저벅이며 우리의 주변으로 차오르는 시간, 우리의 곁으로 오시는 이, 저물 듯 오시는 이. 아마도 그 저녁 마냥 차분한 모습의 그런 사람이 아닐까. 그 분의 눈빛, 늘 섧은 빛이라고 하는데, ‘섧은 빛’은 과연 어떤 빛일까. 아마도 무언가 원통하고 억울함으로 인해 슬픔이 마음 가득 찬 그런 눈빛이리라. 마음 가득 슬픔을 품고, 그렇지만 차분히 오시는 그 분.

그러한 분 맞이하려고, 엉겅퀴 날카로운 잎새 마냥 삐죽삐죽 자라난 마음 풀어버리고, 시름으로 지새우는 밤. 아, 아 그리움으로 봄바람 무너지는 소리 하나, 자욱이 마음 그득 깔리는구나. 저물 듯 오시는 분, 가슴 가득 슬픔 여미고, 주변으로 차오르는 어둠 마냥 차분히 나를 에워싸듯이 오시는 분, 그 분 기다리는 마음, 어쩌면 그 마음, 섧고도 섧은 빛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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