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지금 정치권의 관심거리는 내년 보궐선거다. 성추행 혐의를 받던 박원순 시장의 사망과 성폭력 사건에 의한 오거돈 시장의 사퇴로 공석이 된 단체장을 다시 선출하는 문제는 큰 관심을 불러올 사안일 수밖에 없다. 모든 정치 사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로 온 국민이 고통받고 있다. 양극화와 빈익빈부익부 사회에 불어 닥친 대재앙이다. 지금 정치권은 여야 구분 없이 민생을 살피고 일자리를 보장하고 기후위기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 4월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 때 여당후보 공천 문제가 쟁점이 되면서 민생문제와 개혁과제는 뒷전으로 밀리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민주당이 부산시장과 서울시장 후보를 내겠다고 고집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은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은 나라로 말하면 헌법이라 할 당헌에 못 박혀 있는 규정도 지키지 않고 번갯불 콩 구워 먹듯 당헌을 뜯어고치고 부산시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당헌 개정에 대한 전당원 투표에서 86%에 이르는 압도적인 찬성표가 나왔지만 지금 보이는 민주당의 행태는 커다란 재앙을 낳게 될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신뢰를 훼손한 점이다. 정치사나 개인사나 믿음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다. 모든 관계의 출발점은 믿음이다. 당원의 총의로 만든 당헌마저 지키지 않고 다시 당원의 뜻을 물어 신뢰를 스스로 허물고 있다. 한국 정치사에 이처럼 어리석은 행동이 또 있을까?

민주당 당원들이 서울시장 후보와 부산시장 후보를 내겠다는 총의를 드러낸 이유는 짐작이 된다.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이기게 되면 문재인 정부가 급격히 힘을 잃지 않을까 걱정했을 것이고 내년 말 대통령 선거에 먹구름이 낄 가능성을 염려했을 것이다. 그런 마음이었다면 당헌을 개정하지 말아야 했다. 당헌 개정 결정은 국민과의 약속을 스스로 거스르는 행위로 후보를 내더라도 질 가능성을 높이는 행위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야당시절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사안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국민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 정치세력을 응징해 왔다. 주권자의 응징을 받아서야 어떻게 성공한 정치라 할 것인가? 유권자의 응징을 자초하는 행동은 피하는 게 스스로에게도 득이 된다. 내년 보궐선거에서 집권당이 유권자의 응징을 받게 된다면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이 탄생함을 의미한다.

민주당은 지금 하는 행위가 정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는 게 중요하다. 지금 당장 당헌을 원상회복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다. 초심을 완전히 잊지 않았다면 내년 부산시장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선언부터 하는 게 좋다. 당헌을 바꾼 것 역시 잘못됐다고 인정하고 사과하는 게 도리다.

무신분립이라고 하지 않던가. 믿음이 무너지면 바로 설 수 없다. 문 대통령은 민주당의 당헌개정 투표에 대해 알고 있을 것이다. 대통령은 스스로 한 말이 빈말이 아니라면 그리고 당헌을 개정하는 것이 정당성이 없다는 걸 인정한다면 지금이라도 입장 표명을 해야 한다.

민주당이 후보를 내지 않겠다고 결정한다면 정도를 걷기를 바라는 국민들의 호응을 얻을 것이다. 민주당 후보가 나오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시민후보가 출마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국민의힘 후보는 당선이 쉽지 않을 것이다.

정도를 두고 삿된 길을 걷다가 망한 정치세력이 많다. 공통점은 믿음을 저버렸다는 점이다. 자신의 시각에 갇히거나 자신이 속한 조직을 보존하는 데 집착하다 보면 대국을 보지 못하게 되고 판을 그르친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은 부산시장,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겠다는 그릇된 마음을 접기 바란다. 잘못을 얼른 인정하고 진솔하게 사과를 한다면 국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 시간이 없다. 늦기 전에 결단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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