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장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11.4
김장 (출처:게티이미지뱅크) ⓒ천지일보 2020.11.4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찬바람이 점점 더 매서워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언제 시작됐을까 할 정도로 벌써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과연 ‘입동(立冬)’이 다가오고 있음을 실감케 하는 계절이다. 조금은 쉬고 싶은 시기지만, 이때 우리 선조들의 손길은 더욱 바빠졌다. ‘한 해 밥상 농사’라고 하는 ‘김장’ 때문이다. 이와 관련, 우리 역사 속에 어떻게 김치와 김장이 기록되었는지 알아봤다.

◆김치 원형은 절임 음식

김치는 무, 배추 등 각종 채소를 소금에 절여 고추와 마늘의 양념을 버무려 만든다. 항암효과와 비만 억제 효과가 뛰어나 세계 5대 건강식품의 하나로 손꼽힌다. ‘김장 문화’는 2013년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한국 대표 식문화가 전 세계인이 함께 보호하고 전승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김치에 대한 기록은 역사적 자료 곳곳에 남아 있다. 3천 년 전 기록된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에 보면 ‘오이를 깎아 저(菹)를 만들었다’고 했다. 다른 문헌에도 오랜 보관을 위해 초절임하거나 숙성을 통해 신맛을 내는 ‘저’를 만들었다고 하는데, 이것이 김치 원형으로 추정된다.

우리 선조가 김치를 담근 최초 기록은 중국 삼국지의 ‘위지동이전’ 고구려조에 나오는데 “고구려인은 술 빚기, 장 담그기, 젓갈 등의 발효 음식을 매우 잘 한다”고 적혀있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긴 겨울철 채소를 저장할 때 소금, 식초, 장 등이 많이 활용됐다.

우리나라에 고추가 들어온 것은 조선시대 임진왜란 전후다. 이수광의 ‘지봉유설(1613)’에는 “고추에는 독이 있다. 일본에서 건너온 것이라 그 이름을 왜겨자라고 한다”고 기록돼 있다. 중국 고서인 ‘본초강목습유(1765)’에서는 “이 고추는 고추장을 비롯한 여러 용도로 쓰인다”고 적혀있다. 고추 유입으로 붉은색을 띠는 김치가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소금에 절이는 장아찌 형태에서 벗어나 향신료를 넣거나 파, 마늘, 생강을 넣은 양념형 김치도 등장했다. 특히 1700년대 중엽에는 통이 크고 속이 꽉 찬 결구형 배추가 중국으로부터 들어오는데, 이때 배추가 김치의 주재료가 됐다. 이것이 오늘날의 통배추 김치다.

◆김장은 ‘일년지 대사’

해마다 우리 선조들은 김장을 담갔다. 추운 겨울 부족한 채소 섭취를 위해서다.

자료에 따르면, 김장의 어원은 ‘침장(沈藏)’에서 유래됐고 음운이 변화해 오늘날 김장이 됐다.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 실린 ‘가포육영(家圃六詠)’에는 “순무를 장에 넣으면 삼하(三夏, 여름 3개월)에 더욱 좋고, 청염(淸鹽, 소금)에 절여 구동지(九冬至, 겨울 3개월)에 대비한다”고 적혀 있다. 이를 통해 고려시대부터 김장이 시작됨을 알 수 있다.

19세기 세시풍속집 동국세시기에는 “봄에 장 담그기, 겨울의 김장하기는 가정의 1년 계획이다”라고 할 정도로 중시 여겼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정약용의 아들 정학유가 쓴 ‘농가월령가’에도 “무, 배추 캐어 들여 김장을 하오리라, 앞 냇물에 깨끗이 씻어 소금 간을 맞게 하소. 고추, 마늘, 생강 파에 젓국지 장아찌라(생략)”하며 김장 모습이 자세히 묘사됐다.

예로부터 김장은 하늘과 땅, 사람의 조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했다. 하늘이 허락해 준 맑은 날이어야 하고, 토양의 영양분으로 자라난 좋은 재료가 필요했다. 이웃, 가족, 친지도 한데 모일 수 있는 날이어야 했다. 어느 하나라도 부족하면 안됐다.

보통 겨울이 시작되는 입동(立冬)을 전후로 김장을 하는데 입동은 우리 민족에게는 마지막 수확철이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수확을 끝으로 조상에게 감사함을 올리는 제사를 지냈다.

또 ‘치계미(雉鷄米)’라고 해서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대접하고 잔치를 벌이기도 했다. 수확을 통해 얻은 채소, 그리고 맛깔스러운 김장은 추운 겨울을 이기는 하늘이 허락해 준 지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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