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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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部下)라는 말은 본래 군대 용어였다. 고대 중국 삼국지 위지 사마지전에 ‘각기 부하들이 계략을 세워 다른 국가를 멸망시켰다’는 기록이 보인다. 중국 사전을 보면 동의어로 부속(部屬), 하속(下屬), 치하(治下), 속하(屬下), 속원(屬員)이 쓰여졌다.

한서 조선전에도 ‘부하(部下)에게 명령하여 누선장군(樓船將軍)을 붙잡아 결박한 뒤 그 군사를 좌장군의 군사와 합치고… 단독으로 장졸(將卒)을 합하여 전투가 더욱 맹렬하니, 맞아서 싸우기 두렵거늘 왕(王) 또한 항복하려 하지 않는다’라는 기록이 있다.

초패왕 항우는 용감했지만 슬기가 부족해 평소 부하(部下)를 불신하는 단점이 있었다. 결국 이 약점으로 천하를 유방에게 넘겨주고 자살했다. 항우에 반해 주나라 장군 오기(吳起)는 부하(部下)들을 아끼고 사랑했다. 병사의 발뒤꿈치에 난 종기(腫氣)고름을 입으로 빨아줬다. 이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 ‘연저지인(吮疽之仁)’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도 부하들을 매우 아꼈다. 이 장군은 평소 ‘나 이순신은 임금의 신하가 아니라 백성의 신하다’라고 말했다. 봉건 사회에서 이 말은 역적으로 몰릴 말이다. 그러나 장군의 마음속에는 전란 가운데서 신음하는 부하들과 백성들이 있었다.

막걸리를 즐긴 이 장군은 주석에서만큼은 부하 장졸들과 허심탄회하게 어울렸다. 낮은 계급의 부하가 상을 당해도 직접 문상을 했다고 한다.

전남 여수 충무공 유적인 고소대에는 타루비(墮淚碑)가 있다. ‘장군의 전사를 슬퍼해 부하 장졸들이 언제나 눈물을 흘린다’는 뜻에서 세운 비다.

어진 장군은 죽어도 이처럼 부하들의 가슴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장수라면 모름지기 이 장군 같은 부하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요즈음 ’검찰총장이 법무장관의 부하냐, 아니냐’는 논쟁이 시끄럽다. 지난번 국회 검찰청 국정감사 자리에서 윤 총장이 ‘법리적으로 검찰총장은 장관의 부하가 아니다’라고 천명한 것에 법무장관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윤 총장은 ‘장관의 부하라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먼 얘기가 되고 검찰총장이라는 직제를 만들 필요도 없다’고 강조했다. 백번 옳은 말이 아닌가.

사실 민주국가에서 법무부가 검찰을 통제하거나 좌지우지하려 한다면 이는 중대한 헌법파괴 행위다. 군대처럼 부하라는 종속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권력의 부정부패를 공정하게 수사하지 못하게 된다.

검찰청은 법무부 소속의 외청(外廳)이다. 그러나 일반적 외청과는 달리 수사와 공소에 있어서는 검사들 개개인이 단독적 기관이다. 검찰청의 수장은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서 ‘청장’이라는 호칭과 달리 ‘총장’이라는 용어를 쓴다. 검찰총장은 타 외청장과 달리 장관급이다.

지금 대한민국이 법난 상태로 치닫고 있는 것은 바로 추 법무장관이 검찰을 ‘부하로 부리겠다’는 저의에서 비롯된다. 부하라고 한다면 살아있는 권력으로부터 검찰에 대한 외풍을 막아줘야 하지 않을까.

검찰 내부는 추 장관의 잇따른 감찰권 발동에 저항하고 있다. 한 검사는 ‘정부와 법무부의 방침에 순응하지 않거나 사건을 원하는 방향으로 처리하지 않는 검사들을 인사로 좌천시키거나 갖은 이유를 들어 사직하도록 압박하는 것을 검찰개혁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라는 요지의 비판 글을 쓰기도 했다.

정권이 부패를 숨기기 위해 검찰을 장악하려는 의도는 적폐다. 대통령이 헌법을 지키고, 검찰의 중립을 도모하려면 한시라도 빨리 법무장관을 경질해야 한다. 나라가 너무 어지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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