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대 국회에서 여야 간 논란 끝에 패스트트랙까지 거치면서 어렵게 출범 준비를 마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막판에 발목이 잡혀 있다. 관련법에 따라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에 야당 몫을 추천해야 할 국민의힘이 발을 빼고 있기 때문이다. 그새 검찰은 법무부와 혈투를 벌였다. 윤석열과 추미애로 대변되는 끝없는 공방전은 국정감사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됐다. 우리 헌정사에서 검찰이 이번만큼 정치의 중심에 진입한 적이 있었는지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동시에 공수처가 왜 필요한지를 거듭 확인시켜준 대목이었다.

민주당은 연일 국민의힘을 압박하며 추천위원 명단을 제출하라고 요청하고 있다. 벌써 법적인 출범시기를 100일이나 지났다. 공수처가 법대로 가동됐다면 지금의 법무부와 검찰의 볼썽사나운 논란은 다른 양상을 보였을 수도 있다. 정치권 공방 대신에 공수처가 소임을 다한다면 소모적인 정쟁은 어느 정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이대로의 검찰을 그대로 가지고 갈 수는 없다. 공수처 설치가 검찰개혁의 핵심이 된 배경이기도 하다.

최근 라임자산운용(라임) 사태의 핵심 인물인 김봉현 전 스타모빌리티 회장이 옥중 입장문에서 검사들에게 일천만원대의 향응을 베풀었다고 주장했다. 그 중에 한 명은 실제 라임사태 수사팀으로 들어왔다는 말까지 했다. 사실이라면 ‘막장 검찰’의 추한 모습을 거듭 확인한 셈이다. 그러나 그 진실여부를 놓고 또 법무부와 검찰이 충돌하고 있다. 공수처가 있었다면 당장 수사하면 될 일이지만, 법무부와 검찰이 서로 아전인수식의 주장을 하는 바람에 국민의 심경은 참으로 씁쓸함을 지울 수 없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인지, 어느 쪽이 국민을 속이고 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 벌써 수개월째 반복되고 있으니 말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힘이 ‘라임·옵티머스 사건’에 대한 특별검사 도입 법안을 발의했다. 검찰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면 검찰이 어떤 결론을 내놓더라도 국민은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 공방전은 더 격화될 것이며, 진실은 더 묻히고 말 것이다. 이런 점에서 여야 정치권 인사들이 거론되고 있으니, 이참에 특검 수사로 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여권 입장에서는 유불리를 떠나 특검 자체가 이슈 몰이를 한다는 점에서 반길 수만은 없겠지만, 검찰 수사에 대한 불신을 강조한다면 특검을 마냥 반대만 해서도 안 된다. 하지만 더 아쉬운 것은 국민의힘 원내전략의 실패가 크다는 점이다. 이미 법이 통과된 공수처 설치는 지금껏 발목잡기 하다가 이제 와서 자신들에게 유리하다고 특검을 하자는 주장을 여당이 받아주겠는가 하는 점이다. 게다가 두 현안에 대한 ‘패키지딜’도 명분이 약하다. 기회가 왔을 때 그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국민의 신뢰마저 얻지 못하고 있다면 국민의힘을 보는 시선도 참으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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