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헌법 제3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라고 해 헌법상 의무로 납세의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납세란 세금을 내는 것을 말하며, 국가는 국민이 낸 세금으로 운영된다. 이 헌법 규정에 따라 모든 국민은 원칙적으로 예외 없이 세금을 내야 한다. 다만, 이 규정에서 보듯이 납세는 법정주의에 따라 국민이 세금을 낸다. 이 규정은 조세평등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납세의 의무를 부과하고 있지만, 납세는 국민에게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외국인이라 해도 경제활동을 통해 소득을 올리거나 주택을 취득하거나 세법에 따라 납세의 의무가 발생하면 관련 법률에 따라 세금을 납부해야 한다. 헌법 제38조가 모든 국민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는 것은 대한민국 헌법에 따라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 국민에게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인 국민의 의무를 명확하게 하려는 것일 뿐이다.

헌법뿐만 아니라 국세기본법에도 조세에 관한 개념을 정의하고 있는 규정은 없다. 조세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수요를 충족시키고 경제적·사회적 특수한 정책을 실현시키기 위해 국민이나 주민에게 특별한 반대급부 없이 강제적으로 부과 징수하는 과징금을 의미한다. 현대 국가의 활동범위가 확대되고 다양한 과제의 수행이 거의 필수적인 국가의 의무가 되면서, 재정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조세정책은 국민의 재산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게 됐다.

납세의 의무는 국가의 구성원인 국민이 국가에 대해 재정적 부담을 지게 된다는 적극적인 측면과 국가공권력의 자의적인 과세로 인해 국민의 재산권을 침해당해서는 안 된다는 소극적인 측면이 있다. 즉 납세의 의무에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자의적 과세로 인한 국민의 재산권 침해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이 깔려 있다. 그리고 다른 한편에서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따라 납세의 의무를 면제할 수도 있다는 것을 내재하고 있기도 하다.

납세의 의무에 있어서 법정주의는 헌법 제59조에 규정돼 있는 조세법률주의와 연결된다. 조세와 관련해서는 법률주의에 따라야 하는 것이 현대 조세국가의 기본 원칙이다. 이는 “대표 없이는 과세도 없다”라는 근대 시민국가의 슬로건으로부터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1760년대 당시 식민지였던 미국은 영국의 과도한 조세정책으로 독립전쟁을 일으켰고 1776년 승리하면서 독립을 쟁취했는데, 과도한 과세가 원인 중에 하나였다.

납세의 의무에 대한 법정주의는 세금을 납부해야 하는 대상자인 국민이 합리적 기준에 따라 평등하게 처우되도록 법률에 규정해야 할 것을 의미한다. 이를 조세의 합형평성 원칙이라고 하는데, 헌법재판소는 조세의 합형평성 원칙이 헌법전문, 제1조, 제10조, 제11조 제1항뿐만 아니라 제38조와 제59조 등으로부터 도출되는 원칙으로 세법의 기본 원칙이라고 했다. 즉 조세의 합형평성 원칙은 조세평등주의에 근거하는 것이다.

조세는 국가의 재정을 충당하는 기본적인 재원이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납세의 의무는 재산권을 제한하는 헌법상 의무이다. 그런 이유로 국가공권력의 자의적인 과세는 헌법에 의해 허용되지 않으며, 합리적 기준 없는 과세는 조세평등주의에 위배되는 것이다. 납세의 의무에 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것은 국민의 재산권을 보장하기 위한 또 다른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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