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환 유라시아전략연구소장/전 주러시아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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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사태 발생으로 미-중 갈등이 더욱 고조되면서 한국이 양국 사이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이 자주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미국과 중국 모두 한국에 대해 자국에 경도된 입장을 취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먼저 중국은 지난 8월 양제츠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 방한했고, 미국의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주 일본 개최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 외무장관회의에 참석해 인도-태평양 지역 전체가 중국의 위협에 맞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런 가운데 최근 우리 정부 고위 인사들의 ‘미국과 거리 두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발언이 이어지고 있으며, 주한 미국 대사와 주한 중국 대사를 대하는 태도도 대비되고 있다.

지난 6월 이수혁 주미 대사는 특파원 간담회에서 “우리가 선택을 강요받는 국가가 아니라 이제는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국가라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하고 이어 “한국이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기대고 있는 상황에서 두 요소는 같이 가야 한다”고 했다. 지난 9월 25일 강경화 장관은 아시아소사이어티가 개최한 회의에서 한국이 쿼드 플러스(Quad+)에 참여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다른 국가들의 이익을 배제하는 그 어떤 것도 좋은 아이디어가 아니다”라고 전제하고 “우리는 쿼드 가입을 초청받지 않았다” “우리는 안보는 한미동맹이 우리의 닻(anchor)이라는 점을 매우 분명히 하고 있으며, 중국은 우리의 가장 큰 교역·경제 파트너라 우리 기업인과 시민들에게 매우 중요하다”고 했다.

안미경중(安美經中)이라고 불리는 현 정부의 입장은 경제에 있어 중국이 상수(常數)라고 보고 있는데 과연 그럴까? 안보는 대체재를 찾기가 어려우나 경제도 그럴까? 경제적으로 중국 시장에 의존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의 숙명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우리 정부와 기업이 자초한 것이다. 수입선 다변화와 마찬가지로 수출시장 다변화도 필수적인 것인데 이를 망각한 결과이다. 이는 대체시장을 개척하면서 극복될 수 있는 것이다. 안미경중이 최소한의 설득력을 가지려면 안보에 있어 중국이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중국은 1950년 10월 압록강 너머로 수십만 대군을 보내 우리의 통일을 좌절시켰으며, 1961년에 북한과 동맹조약을 체결했는데 이 조약은 현재도 유지되고 있다. 9월 27일 미국의 군비통제 특사가 방한해 중국이 한국을 겨냥해 산동반도, 요동반도 및 만주 길림성에 배치한 미사일 현황을 설명했다고 한다. 중국으로서는 한반도가 자유민주주의국가로 통일되는 것을 반기지 않으며 따라서 남북한에 대해 이한제한(以韓制韓)정책을 쓰면서 중국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또 하나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은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으로 우리의 역사마저 찬탈하려 한다는 점이다.

현 정부의 정책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중립을 표방하면서 안보 및 경제적 이익을 모두 누리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미국이 중국 공산당 정권의 교체를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에서 양다리를 걸치는 것이 계속 가능할지 모르겠다. 작동 가능한 중립은 과거 영국이 독일과 프랑스 사이에서 취했던 것과 같이 국력이 비슷한 경우에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 갈등이 무력충돌로 비화되는 경우 러시아도 그렇게 할 수 있다. 힘이 상대가 안 되는 경우, 중립은 자칫 외교적 고립으로 전락하고 언제든지 양쪽 모두로부터 압박을 받을 수 있다. 박근혜 정부 때 외교장관은 미, 중 양쪽으로부터 러브콜을 받고 있다고 했고, 현 정부의 외교 장관은 미, 중 양국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는 것이 현실적이냐는 질문에 “특정 국가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은 도움이 안 된다”고 답변했는데 국가 간 관계의 기본을 잘 모르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끝으로 한국이 미국과 거리 두기를 한다고 중국의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변할까? 사드 배치 결정과 관련해 현 정부 초기에 중국에 대해 소위 3불(3不) 원칙을 선언했지만 그 뒤 중국은 치사한 제재조치를 풀었던가? 현재 중국이 적어도 겉으로는 한국에 대해 지지를 요청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는데 한미 관계가 현저히 느슨해지는 경우 한국을 대하는 태도가 돌변하지 않을까?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인 국제사회에서 생존과 번영을 위해 국가는 줄을 서는 것이 일반적이며, 무엇보다도 줄을 잘 서야 함을 역사는 보여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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