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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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장군은 군법을 엄격하게 지켰다. 전라좌수사로 있을 때 왜군 침략소식을 접한다. 장군은 즉시 병력을 소집하고 700여명으로 해전을 준비했다. 그런데 군졸 황옥현이 도주했다. 장군은 군사를 시켜 체포해 참수한다.

배설(裵楔)은 원균 휘하에서 경상우수사까지 지낸 인물이다. 부산포 앞에서 원균이 대패하자 배 12척을 빼돌려 전라좌수영에 전달했다. 부산 패전에 대한 트라우마로 일본군과의 싸움을 반대했다.

배설은 마침 병을 얻어 치료한다고 군막을 떠났다. 그러나 약속한 날이 돼서도 돌아오지 않자 이 장군은 탈영을 상부에 보고한다. 결국 배설은 경북 선산에서 붙잡혀 서울로 압송되고 참수됐다. 나중에는 억울함이 풀려 선무원종공신 1등에 책록됐으나 군대를 무단이탈한 군인에 대한 처벌이 이처럼 추상같고 엄격했다.

조선군은 제도와 운영이 허술해 전란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지방의 군사력을 지휘한 것은 문관인 수령이고 관찰사였다. 수령이 도망가면 군사들은 지리멸렬해 대오마저 갖추지 못했다. 유성룡은 징비록에 다음과 같이 개탄한다.

‘(전략)… 군사들로 하여금 먼저 들판 가운데 모여 장수 오기를 천리 밖에서 기다리게 합니다. 장수가 제때에 오지 않고 적의 선봉이 가까워지면 군사들이 마음속으로 놀라고 두려워하게 되니, 이는 반드시 무너지기 마련입니다.(하략)…’

선조가 피난했을 때 추운 겨울에 성을 지키는 군사들을 위로하기 위해 군영을 순시하게 됐다. 군복을 제대로 입지 않은 군사들이 손을 호호 불며 떨고 있었다. 그런데 더욱 기막힐 일은 이들 군사들이 갓 엄마 품에서 나온 듯한 아이들이었다. 선조가 불쌍해 나이를 물은 결과 12세 정도의 어린이들이었던 것이다.

양반들은 징집대상이 아니었으며 상민들은 면포를 내면 군대를 가지 않아도 됐다.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만 군대에 징집됐기 때문에 이런 웃지 못할 일이 기록되게 된 것이다. 조선의 지배층은 이러고서도 나라가 망하지 않을 것을 기대했는지.

무관을 뽑는 무과도 허술하기 짝이 없었다. 초시에서는 문관처럼 사서삼경을 달달 외워야 했다. 그리고 실기는 처음에는 말을 타고 기사(騎射)하는 시험이 있었는데 참가자가 없어 소를 타고 활을 쏘도록 했다. 그러나 이마저도 없애고 쌀가마니 들기, 격구 등으로 시험을 치렀다고 한다.

추미애 법무장관 아들 서씨가 2017년 주한미군 카투사로 복무하던 중 병가연장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부대에 복귀하지 않았다는 의혹으로 나라가 시끄럽다. 추 장관을 옹호하고 합리화시키려고 여당 인사들의 낯 두꺼운 변명이 도를 넘고 있다. 국방부마저 전화만 하면 휴가를 연장할 수 있다는 해석을 내려 권력 앞에는 군의 기상도 허물어지고 있다는 개탄의 소리마저 나온다.

그런데 전 주한미군지원단장이 서씨 측으로부터 여러 번 청탁이 들어왔으나 단호하게 이를 거절했다는 진술이 나왔다. 추 장관 측에서 서씨에 대해 용산이나 동계올림픽 통역병으로 넣어달라는 청탁을 여러 번 시도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대장은 이를 단호하게 거절한 강직함을 보여줬다. 그래도 우리 군에 이순신 장군 같은 결기가 있는 군인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추 장관은 아들을 수사하고 있는 서울동부지검 검사들을 다른 곳으로 내모는 등 법치파괴 인사를 단행한 바 있다. TV 화면에서 검찰개혁을 호언하는 이들을 보는 것도 국민들은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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