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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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작(扁鵲)은 2500년 전 중국 진나라 명의(名醫)였다. 전설에 죽은 사람도 살려내고 환자 얼굴만 봐도 병명을 알았다고 한다. 사기열전에 보면 그는 ‘세상에 육불치(六不治)가 있다’는 주장을 폈는데 아무리 명의(名醫)라고 해도 고치지 못하는 병자가 있다는 것이다.

‘첫째 불치는 교만해 의사의 이론을 무시하는 자들을 가리킨다(驕恣不論於理, 一不治也)’고 했다. 즉 고집이 세고 오만하거나 지식이 많은 사람은 의사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다가 치료시기를 놓친다는 것이다.

제나라 환후(桓侯)는 편작의 진단을 무시하고 병을 키워 끝내는 오래 살지 못했다. 일국의 고집스런 통치자가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아 결국 자신의 잘못을 고치지 못하고 망한 고사로 비유된다.

초한지의 항우는 대단한 지략가였으면서 유순한 것을 무기로 삼은 유방에게 패했다. 유방은 인자함으로 통치를 이끌었으나 항우는 성질이 급해 인명을 존중하지 않았다. 항우는 영특했던 재상 범증의 간언을 한 귀로 흘려듣다 결국 천하를 잃고 말았다.

옛날 유의(儒醫, 유학서적을 많이 읽은 선비)들도 ‘오만’은 경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고 충고 한다. 이를 버리지 못하면 심화(心禍)가 생기는데 이것이 만병의 근원이 돼 생명을 단축한다는 것이다.

조선 인조 때 몽헌 홍만종(夢軒 洪萬宗)은 초야에서 신선처럼 산 문사였다. ‘스스로 마음을 닦고 유유자적한 삶을 살면 심화를 억지할 수 있다’고 천명했다. 악한 마음을 버리고 천리에 순응하는 것이 장수의 비결이라고 했다. 마음속의 보양탕(保養蕩)을 끓여 하루에 한 대접씩 마셔야 한다고 그 치유법을 순오지(旬五志)에 적고 있다.

세자시절 연산군은 시를 좋아하는 문학청년이었다. 왕이 돼 모친인 윤비의 억울한 죽음을 알고부터 심화병(心禍病)이 폭발해 폭군으로 변했다. 분노 조절 능력을 상실해 정신질환자가 된 것이다.

눈에 거슬리는 상소는 아예 보지도 않았다. 측근에서 충언하는 내시 김처선까지 칼로 난도질을 했다. 처선이 목숨을 걸고 올린 진정한 치료약을 받아들이지 않아 반정을 자초했다.

정조는 종기로 고생을 많이 했다. 평소 정적관계인 정순대비와의 갈등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다. 독서를 많이 해 의학 상식이 풍부했던 정조는 한 여름에도 종기를 치료한다고 이불을 뒤집어쓴 채 수은치료를 했다고 한다. 정조는 독살됐다는 설도 있으나 화로 얻은 질병을 이기지 못한 것 같다.

대통령에게 문제가 되고 있는 부처 개각 등을 요구하는 시무칠조, 만인소가 청와대 게시판을 도배하고 있다. 국정일신을 바라는 민초들의 소리로 회자돼 국민들의 큰 관심을 끌고 있다. 그러나 청와대의 심기가 불편하다는 소리만 들리고 달라지는 것이 없다.

집권여당 최고위원이 아들 병역비리의혹의 중심에 서 있는 법무장관을 옹호하고 있는 것도 국민들의 눈에는 달갑지 않다. 권력을 가진 이들이 겸허함을 잃으면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받지 못한다.

간언이란 약은 비록 쓰지만 먹으면 보약이다. 이런 단순한 진리를 알고도 고치지 못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고집과 오만으로 ‘불치(不治)’가 되면 편작의 경고대로 불행해진다는 교훈을 깨달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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