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이지솔 기자] 24일 천지TV 스튜디오에서 ‘혜원스님의 종교산책’ 제16회가 ‘인내’를 주제로 진행됐다.

진행자인 혜원스님은 알면 쓸모 있는 종교상식 ‘알쓸종상’ 코너로 깨달음을 얻은 이의 몸에서 나온다는 ‘사리’의 의미를 살폈다.

이어 민족도교 김중호 도장은 이번 회차부터 새롭게 연재되는 ‘시대를 빛낸 종교인물 50인’ 코너에서 첫 번째 순서로 유교 인물인 ‘맹자’를 조명했다. 이날 주제에 맞게 맹자의 가르침 중 ‘인내’에 관련된 명언도 살폈다.

이어 종교이슈3 코너에서는 천지일보 강수경 기자가 교회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집단확산과 교회들의 대응, 사랑제일교회 논란, 전광훈 목사의 한기총 사퇴 등 이슈를 다뤘다.

◆ 참된 수행의 결정체 ‘사리’

사리는 불교용어로 오랜 기간 참된 수행의 결정체인 구슬 모양의 유골을 말한다.

보통 시신을 화장하는 다비식을 진행하면 뼈까지 모두 불에 타 없어지지만 사리는 타지 않고 남아있게 된다. 이로 인해 불교도들은 이를 참된 불도수행의 결과로 보고 신앙의 대상으로 여겨 사리를 불탑 안에 두어 보관한다.

‘사리’라는 단어는 범어 ‘Sarira’를 음역한 것으로 원래 부처나 성자(聖者)의 유골을 뜻 했지만 후대에는 화장한 뒤에 나오는 작은 모양의 구슬을 일컫는다. 그렇다고 모든 사리가 반드시 작은 모양의 구슬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사리는 크게 쇄신사리(碎身舍利), 생신사리(生身舍利), 전신사리(全身舍利)로 나눠진다.

쇄신사리는 화장을 한 후 유골에서 나온 경우다. 생신사리는 치사리라고도 불리는데 살아있을 때 나오는 것을 말한다. 전신사리는 온 몸 전체가 사리로 변한 경우를 말한다.

이처럼 사리의 크기는 일정하게 정해진 것이 없고 좁쌀크기에서부터 쌀알, 팥알, 성인의 몸 전체까지 그 크기는 다양하다 할 수 있다. 또한 한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의 과(顆, 사리를 세는 단위)도 모두 다르다.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할 때엔 사리가 8가마 하고도 4말이나 나왔다고 전해진다.

◆ 맹자 “인간은 본디 선하지만… ”

“하늘이 장차 어떤 사람에게 큰 임무를 맡기려 할 때는, 반드시 먼저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고 궁핍하게 만들어 그가 행하고자 하는 바를 어지럽게 한다. 이는 이 사람의 마음을 분발하게 하고 성질을 참게 하여 그가 할 수 없었던 일을 해낼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는 맹자의 가르침 가운데 하나다.

맹자는 큰 뜻을 이루고자 한다면 시련을 극복하고 유혹을 물리칠 수 있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인물이다.

그가 이 같은 이야기를 꺼낸 데는 당시 상황과 맥이 닿아 있는데, 맹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춘추전국시대로 혼란이 극에 달한 시기였다.

제후들 간에 벌어진 빈번한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고 ‘자식이 아비를 시해하는 자가 있다’는 그의 기록에서 볼 때 사회 질서 또한 매우 문란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 같은 혼란한 시기를 살아간 맹자는 여러 나라를 돌아다니면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어 태어난 시기와 나라가 분명치 않다. 다만 기원전 4세기 후반 노나라와 인접한 추(鄒)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맹자 가르침의 핵심은 크게 ‘성선설’과 ‘왕도정치’로 좁혀진다. 맹자는 ‘사람치고 선하지 않은 이가 없다’고 주장한 인물이다. 그는 그 예화로 ‘우물가의 어린아이’를 들었다.

한 어린 아이가 우물가에 기어 들어가려는 것을 본다면 모두가 놀라 측은한 마음이 들게 되는데 이는 그 부모와 친교를 맺기 위함도, 벗들로부터 칭찬을 받기 위함도 아니요, 이는 선한 본성이 내재 돼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선한 본성이 있다 하더라도 외적, 환경적 이유로 악하게 변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는 것이 맹자 가르침의 핵심이다.

또 맹자는 왕도정치를 내세웠는데, 임금이 백성을 다스림에 있어 힘과 무력 대신 어진 마음과 덕으로 다스릴 때 백성들이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따른다고 말하고 있다.

그의 저서 ‘맹자’에 “가장 귀한 것은 백성이다. 그다음이 사직이며, 임금이 가장 가벼운 존재”라고 기록해 놓기도 했다. 곧 임금은 백성들과 그들의 평안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민본(民本) 사상’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의 ‘성선설’과 ‘왕도정치’를 비롯한 사상들은 후대 유학 사상의 발달에 많은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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