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천지일보 2020.8.23
ⓒ천지일보 2020.8.23

조선 왕조사회에서 ‘비답(批答)’이란 것이 있었다. 언관이나 사대부 혹은 유생들이 임금에게 상소를 하게 되면 즉시 답을 하는 제도를 말한다. 임금은 상소 내용이 비위에 거슬리고 마음에 안 들어도 반드시 답을 해야 했다. 오늘날 민주주의 제도에서도 찾을 수 없는 책임 있는 소통이었던 것이다.

만약 임금이 답을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됐을까. 언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재차 부당하다고 아뢴다. 성균 유생들이 관을 비우고 대궐 앞에 나가 부복해 연좌 항의 농성을 할 때 비답이 없으면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성균관 고위관리들이 타일러도 유생들은 듣지 않았다.

임금의 비답은 당대 최고의 지성인 대제학이 들고나왔다. 그만큼 민의를 소중히 여겼기 때문이다. 비답을 받은 유생들이 임금의 답변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상소를 하며 또 재차 비답을 기다렸다.

광해군 당시 정인홍, 이이첨 등은 유생들의 최고 존경을 받은 퇴계 이황의 문묘배향을 반대했다. 분노한 유생들은 성균관을 뛰쳐나와 대한문 앞에서 연좌 농성에 들어갔다. 젊은 유생들은 이이첨의 즉각적 삭탈관직을 주장하고 임금에게 공의에 서라고 호소했다. 이 사건은 후에 광해군을 축출하는 반정의 구실로 발전하게 된다.

조선 간관들은 임금이 상소, 간언을 잘 받아들이는 것을 따져 점수를 매기기도 했다. 휴암 공서린(休庵 孔瑞麟)은 성품이 대쪽 같았던 사대부였다. 경연석상에 나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509년 중종4년 6월 壬戌조)

‘임금의 납간(納諫, 간언을 용납하는 일)에는 간언을 즐기는 자(樂諫者), 간언을 용납 하는 자(用諫者), 간언을 버리는 자(棄諫者), 간쟁을 죽이는 자(殺諫者. 怒諫者) 등 4가지로 분류합니다. 낙간자는 성스럽게 되고, 용간자는 어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기간자는 어지럽게 되고 살간자는 망하게 됩니다.’

경연에서 임금을 대면하고 간언을 잘 수용해야 함을 말한 것이다. 간관들은 임금 앞에서도 자신의 안위를 생각지 않고 올바른 소리를 했다. 감히 목숨을 내 놓지 않고는 이런 충언을 할수 없었을 게다. 공서린은 기묘사화 때 사림들을 옹호하다 화를 입었다.

간언은 반드시 ‘공론(公論)’을 담아야 한다. 자신의 이익이나 붕당을 위한 간언은 진정한 공론이 될 수 없다. 민본(民本)과 위민(爲民)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조광조)

율곡은 ‘공론은 나라 사람으로부터 나오며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국민에 의해 형성되는 공론은 막을 수가 없다. 공론이 조정에 있으면 그 나라는 다스려지고, 없으면 혼란해 빠지며 망한다(율곡전서)’라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 촛불로 태어난 현 정부는 얼마나 공론을 중요시하며 국민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국민들의 뼈아픈 호소를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것은 아닌지. 언론은 또 국민들의 공론을 대변하고 있는지. 정권 편에 서서 곡학아세(曲學阿世)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난 8.15 광복절 광화문 일대에는 빗속에도 불구 현 정부를 비판하는 수만명의 시민이 몰렸다. 코로나19 방역당국의 집합금지명령에도 불구, 불이익과 위험을 무릅쓰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은 제각각 구호가 적힌 팻말을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기도 했다. 누구의 사주나 정치권에서 동원된 군중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이튿날 청와대의 비답은 실망만을 안겨주었다. 국민들의 시위를 도전과 불법으로 간주, 진정한 호소와 간언을 외면했다. ‘기간(棄諫)이 나라를 혼란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경연의 쓴소리를 수용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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