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겸 동국대 법학과 교수

우리나라 헌법 제13조 제2항을 보면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조항은 헌법이 열거하고 있는 기본권들 중에서 재산권에 대해 소급입법으로 박탈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헌법은 재산권에 대해 취득 시점 이후에 법률을 제정해 그 권리를 박탈하지 않겠다고 하고 있다. 소위 소급입법금지원칙, 형사법적 관점에서는 형벌불소급원칙이라 할 수 있는 이 원칙은 법치국가원리로부터 파생되는 원칙이다.

이미 보유하게 된 기본권에 대해 시간을 거슬러 박탈하지 않겠다는 것은 법에 대한 신뢰를 구축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법적 안전성을 확보해야 법에 대한 신뢰를 보호하고 법의 우위원칙이 확립됨으로써 법치국가의 실현이 가능해진다. 즉 소급입법금지원칙은 법치국가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이다. 물론 소급입법금지원칙은 원칙이기 때문에 특별한 사유가 발생하면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법언(法彦)에서 보듯이 예외 없는 원칙은 없기 때문이다.

헌법은 재산권에 대해서만 법률을 제정해서 소급해 박탈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명확한 자료가 없어서 파악하기 어렵다. 소급입법금지에 관한 헌법 규정은 1962년 제5차 개정헌법 제11조 제2항에 도입되면서 시작됐다. 이 개정헌법은 쿠데타로 집권한 정부가 만들었다. 그런데 이 헌법에는 우리나라 헌법사에서 전환점을 이루는 특이한 조항들이 규정됐다. 예를 들어 당시 헌법 제8조에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국가의 기본권보장의무 등이 신설됐다.

헌법이 재산권의 박탈에 대해 소급입법금지원칙을 규정한 것은 과거 부정축재에 대한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했기 때문이다. 현행 헌법이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박탈하지 못하도록 한 것은 재산권이 생활의 기초가 된다는 것과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대한민국의 경제질서에서 재산권이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헌법은 재산권의 박탈만 금지한다고 했기 때문에 소급입법으로 재산권을 제한하는 것은 가능하다.

소급입법금지원칙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법률의 효력은 원칙적으로 법률제정 이후부터 발생해야 한다. 그런데 소급입법을 허용하면 이미 종결된 법률관계가 시간과 관계없이 필요에 따라 차후 변화될 수 있기 때문에, 법률에 대한 불신이 법적 안정성을 해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 그래서 법우위의 원칙이 적용되는 법치국가에서는 법의 시간적 효력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사실관계가 법률 이전에 발생했는지에 따라 소급입법의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소급입법은 사실관계가 이미 종료된 경우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경우로 구분해, 전자를 진정소급입법이라 하고, 후자를 부진정소급입법이라 하고 있다. 후자는 사안에 따라 허용 여부가 결정되지만, 전자는 이미 종료된 사실관계에 사후적으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법적 안정성을 해하는 것으로 헌법상 허용되지 않는다. 그런데 진정소급입법이라고 해도 달성하려는 공익이 매우 중대하고 국민이 소급입법을 예상할 수 있는 경우에는 극히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의 국가귀속에 관한 특별법’은 그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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