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아리

이 순(1960 ~ )

 

엄마가 행상 나간 빈집

어둠발이 내리는 장독대에서

여섯 살 서영이는

가슴까지 올라오는 빈 항아리에 대고

‘엄마아!’ 불렀다 자꾸자꾸 불렀다

고양이도 따라서 ‘야아옹!’ 울었다

 

[시평]

엄마와 단둘이 사는 아이들도 많이 있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린 딸 하나 데리고 엄마는 어려운 생활을 해나간다. 그래서 엄마는 물건들을 받아서 행상을 나간다. 아침 먹고 엄마가 행상하러 나가면, 집에는 어린 딸, 여섯 살짜리 서영이만 남는다.

집에서 마당의 돌멩이도 차보고, 흙도 모았다가는 다시 흩트려 놓고, 아무리 이 장난 저 장난을 해 보아도, 하루의 시간은 어린 서영이에게 너무나 길고 무료하다. 그래서 어린 서영이는 행상 나간 엄마가 보고 싶어진다. ‘엄마 언제 와!’ 이렇게 물어볼 데도 없는 서영이는 자꾸 엄마가 부르고 싶어진다.

어둑어둑해져도 아직 돌아오지 않는 엄마가 더욱 보고 싶어서, 서영이는 어둠발이 내리는 장독대에서, 가슴까지 올라오는, 키가 큰 빈 항아리에 대고, ‘엄마!’하고 불러본다. 그러면 ‘엄마!’하고 부른 그 소리가 항아리에 울려서 ‘엄마마’하고 메아리가 되돌아온다. 항아리 속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 서영이도 번연히 알지만, 마치 엄마가 대답을 하는 듯해서, 서영이는 자꾸만 항아리 속에다 대고 ‘엄마아!’하고 불러본다.

하루 종일 서영이 옆에서 낮잠만 자던 고양이가 눈 배시시 뜨고는, 서영이가 장독에 대고 부르는 ‘엄마아’ 하는 소리에 맞추어 ‘야아옹!’하고 운다. “서영아 엄마 이제 곧 오실거야, 나도 엄마 보고 싶어.” 서영이 마음 다 안다는 듯이 고양이가 가만히 서영이를 쳐다보면서 ‘야아옹!’하고 운다. 어둠이 자꾸만 장독대 주위를 야금야금 에워싼다.

윤석산(尹錫山) 시인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