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대부업법 제정 당시 법 만드는 데 기여했던 김명일 서민금융연구원 이사가 당시를 회상하며 아쉬운 점들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8.12
2001년 대부업법 제정 당시 법 만드는 데 기여했던 김명일 서민금융연구원 이사가 당시를 회상하며 아쉬운 점들을 말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8.12

정부, 대부업체 옥죄는 데 초점
피해는 결국 서민들한테 향해
제도 예측가능성 없어 업계 불안

[천지일보=김현진 기자] 지난달 초 금융위원회는 저축은행법과 대부업법 심의대상 140건 중 17건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개선사항에는 추진 불법사금융업자 불법이득 제한, 신종 무등록영업 규율근거 보강, 서민금융기관 사칭광고시 처벌근거 신설, 대부이용자의 권리 보장 확대 등이다. 15년 이상 진통을 겪어왔던 P2P(개인 대 개인 대출 중개법인) 대출법도 통과되면서 하반기부터 시행된다.

2002년 대부업법이 제정되고 시행된 이후 대부업계 시장이 많은 변화가 생기고 각종 규제가 촘촘히 생기면서 많은 부작용을 낳아온 가운데 시장에서는 긍정적으로 반기는 부분도 있으나 일부에 대해서는 실효성에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18년 전 대부업법 제정 당시 제도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김명일(55) 서민금융연구원 이사는 정부가 그간 금융소비자들을 위하는 정책이나 불법 사채시장을 때리는 정책들이 계속해서 대부업체들을 때리기 때문에 이는 결국 서민 금융취약계층에게 돌아왔다고 지적했다.

김명일 이사는 고려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1년간 SK증권 법무팀에서 일해 금융관련 법에 있어서는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이 같은 노하우를 갖고 당시 금융감독원에서 재직 중이던 조성목 서민금융연구원장과 함께 ‘대부업의 등록 및 금융이용자보호에 관한 법률’ 일명 ‘대금업법(현 대부업법)’을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간 사금융을 양성화하고 피해를 줄여 서민들의 금융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금업법을 제정하기 위한 노력은 있었으나 국회문턱을 넘지 못했을 정도로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1963년 말 대통령 취임하고, 1964년 8월에 정부입법으로 ‘대금업 단속에 관한 법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곧 가두리를 만들어 대부업체들을 제도권으로 들어오게 하려는 것이었다. 현재는 대부업이 등록제로 됐는데, 당시에는 신고제와 최고금리를 제한하려는 법안이었다. 월 이자율 7%와 연이율 84%를 넘지 말라는 내용도 포함된 법안이었는데 국회 상정만 되고 논의조차 되지 않으면서 임기만료돼 폐지됐다.

1993년에도 금융실명제가 시행되면서 이를 완성 차원에서 대부업법 제정이 추진됐으나 이 역시 불발에 그쳤다. 1995년에 공청회도 개최되는 등 활발한 논의가 있었지만 그간 숨어서 움직이던 정치자금의 흐름이 투명해진다는 점 때문에 정치권의 반발로 국회 제출조차 되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갔다.

그만큼 대부업법을 제정하는 일이 보통 쉬운 일이 아니었다. 김명일 이사는 법 제정에 참여하게 된 계기에 대해 “증권회사에 근무하면서 명동을 중심으로 한 사채시장을 접하게 됐고 나름의 생리를 알고 있었기에 사금융양성화라는 큰 대의와 연결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이자제한법이 폐지되면서 소액신용대출 사채시장 이자율이 연 100% 정도까지 되자 2000년경 규제 필요성이 제기됐고, 정부 주도로 대부업법 제정 논의가 활발히 진행됐고,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정부(정책)와 시장의 소통 역할을 할 협회가 필요했고 협회 창립에 참여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에는 일본계 자금이 국내에 유입돼 강남역을 중심으로 일본의 개인신용정보평가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대금업 경영기법을 바탕으로 급성장 하던 시기이기도 했다. 은행창구처럼 창구에서 심사를 통해 대출을 해주는 영업방식까지 체계적으로 갖춘 일본계 대부업체들을 국내업체들이 따라가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이것이 국내 대부업체들을 많이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김 이사는 비교적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김명일 서민금융연구원 이사가 정부정책이 대부업체들에 대해 규제에만 초점을 맞춰 때리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8.12
김명일 서민금융연구원 이사가 정부정책이 대부업체들에 대해 규제에만 초점을 맞춰 때리기만 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천지일보 2020.8.12

김 이사가 2001년 대부업협회(현 한국대부금융협회)를 출범시켜 대부업법 제정 의견을 제시한 결과 2001년 6월 정부입법으로 제안됐고, 2002년 7월 31일 본회의를 통과해 10월 시행되기에 이르렀다. 김 이사는 법 시행을 앞두고 대부업등록 대상업체들을 대상으로 전국 교육 투어에 참여해 설명하는 활동을 했다. 처음에는 40개 업체가 등록에 참여했고, 이후에는 약 1만개가 등록하는 등 제도권 안으로 많은 업체들이 들어오도록 하는 성과를 냈다. 대부업협회는 법 시행 이후 2003년 재경부 산하 사단법인이 됐고, 김 이사는 협회에서 7년간 사무총장직을 수행하며 건전한 대부업 발전을 위해 힘을 쏟았다.

그러나 김 이사는 현재까지 지내면서 당시 법 제정에 대해 많은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그는 “첫 단추부터 잘 꿰야한다는 각오로 대부업법이 제정됐지만 제도화 과정이 너무 조급했다는 생각이 있다. 일본처럼 출자법(형사처벌 기준)과 이식제한법(이자제한법, 민사상 무효)을 다르게 해야 하는데, 이를 고민 없이 모두 형사법으로 같게 했다”고 말했다.

또한 “대부업법 제정은 저수지에 가두리를 설치하는 것과 같았다. 대부업체들을 가두리를 설치하고 저수지로 가두는 것에는 목적이 있는데, 그 취지를 구현하려 하기 보단 가둬 놓고도 가두기 전과 같은 태도를 취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곧 대부업체가 정책의 취지에 벗어나 저신용자를 위한 금융의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는 데 부족하다는 것. 이 같은 이유는 정부가 계속 규제에만 초점을 맞추고 대부업체들을 계속 때리고만 있는 것이 그 원인이라고 김 이사는 지적했다.

이에 김 이사는 “진입장벽부터 인적·물적 요건, 대부업을 하기 위해 손해보상책임 보증금도 내놓고 돈을 쌓아놓게 하고, 추신 부분도 굉장히 꼼꼼하게 규제를 하고 있다”면서 “대형업체들의 경우는 중앙정부에서 관리감독하고 있는데, 자금조달 방식이라던지, 부실채권이 있어도 손해를 보고 매각을 해도 회계처리로 하고, 대출충당금을 쌓아봐야 손비로 인정을 해주지 않는 애로점들이 있다. 이런 측면에서 최소한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대형업체에 한해서라도 관점을 바꿀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또한 김 이사는 대부업에 관한 제도가 예측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도 개선요소로 꼽았다. 그는 “대부업계에서 제일 힘든 것이 제도의 예측가능성이 없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예측이 되면 거기에 맞춰서 사업구조를 변화시킨다던지 할 여지가 있는데, 예측이 되지 않아 늘 불안하고 지속가능성이 떨어진다. 소규모나 중소업체들은 이 사업을 언제 접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안타까움을 표했다.

대부업체의 장점은 서민들이 급전이 필요할 때 간편하고 빠르게 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인데, 정부가 대부업체들을 점점 옥죄는 것이 오히려 서민들이 대부업체에서조차 돈을 빌리지 못해 불법사금융으로 빠지고 있다는 점을 정부는 간과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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