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오늘은 61년 전 조봉암 선생이 이승만 폭압정권에 의해 살해당한 날이다. 선생은 아직도 서훈이 안 됐다. 더욱 절망스러운 것은 될 조짐조차 안 보인다는 점이다. 유족은 더 이상 서훈신청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얼마나 한이 맺혔겠나.

노태우정권까지 포함해서 이 땅의 독재정권은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는 서훈에서 철저히 배제했다. 김대중 정부 들어와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에 대한 서훈을 시작했지만 극히 적은 인원에 불과했다. 노무현 정부에서 좀 더 확대됐지만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대부분은 빠졌다. 해방 이후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했다거나 징역형을 받았다는 이유로 뺐다.

1995년 유족과 문중은 보훈처에 서훈신청을 했다. 즉시 거부됐다. 서훈배제 이유는 상훈법 규정이었다. 8조에 “사형, 무기, 3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의 형을 받은 경우 서훈을 취소한다”고 돼 있다. 죽산은 서훈을 받은 적이 없다. 이 규정을 들어 서훈을 거부한 건 서훈하지 않겠다는 거다. 역사적폐의 전형이다.

2007년 진실화해위원회는 조봉암에 대한 유죄판결에 대해 ‘비인도적 인권유린이자 정치탄압’으로 판단하고 국가의 사과와 피해구제, 명예회복 조치를 권고했다. 유족은 이를 근거로 사법부에 재심을 청구했다. 법원은 시간을 질질 끌다가 2011년에야 무죄로 판결했다. 서훈은 당연한 수순으로 여겨졌다.

무죄판결이 나오자 보훈처가 꺼내든 게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사(1941.12.23)다. ‘조봉암’이라는 인물이 150원을 휼병금(장병 위로금)으로 냈다는 것이다. 유족은 당시 죽산 선생은 그 돈을 낼만한 재력이 없었고 신문에 발표된 지역에 산적도 없다고 한다. 만약 죽산이 그 돈을 냈다면 죽산을 적대하는 쪽이나 총독부에서 대대적으로 보도하거나 알려서 이용해 먹었을 텐데 그런 기록은 발견되지 않았다.

실제는 내지 않았는데 죽산이 낸 것처럼 가짜로 발표했을 수도 있다. 죽산 선생의 평판을 떨어트리고 독립운동을 분열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말이다. 총독부가 기관지를 이용 역공작을 벌이는 건 쉬운 일이고 일제는 그런 짓을 늘 벌여왔다.

조봉암 선생이 우리나라의 독립에 기여한 역할은 전설적이다. 3.1운동으로 1년 옥살이 했다.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체포돼 신의주형무소에서 7년 옥을 살았다. 여기서 손가락 일곱 개를 잃게 된다. 초대 농림부 장관으로 농지개혁을 주도하고 국회부의장을 지냈다.

더욱이 선생은 1945년 1월에 예비검속 명목으로 체포돼 해방 다음날 서대문형무소 문이 열릴 때까지 감옥살이를 했다. 만약 일본 제국군대에 뒷돈을 대는 친일행위를 하는 인물이었다면 일제가 예비검속을 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이승만 정권, 박정희 정권을 비롯한 독재정권은 중도파 인물이었던 여운형, 김규식 선생도 서훈에서 배제했다. 일본제국주의 군대에 들어가 독립운동가를 토벌하는 대열에 앞장선 박정희, 정일권, 백선엽 같은 골수 친일파와 독립운동가를 색출 체포하고 고문하던 김창룡 같은 악질 일본 헌병에겐 훈장을 줄줄이 줬다.

독재정권은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를 서훈에서 배제하고 잊혀지기를 기다리는 전략을 썼다. 문재인 정부는 독재정권과 달라야 한다. 똑같은 행태를 보인다면 촛불혁명의 의미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나? 조봉암 선생과 김원봉 선생 서훈부터 시작하라.

독립운동가 서훈은 어머니를 어머니라고 부르고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작년에 김원봉 선생 서훈이 거론 될 때 새누리당 나경원 원내 대표는 ‘뼛속까지 공산주의자’라며 공격했다. 독립운동 서훈조차 이념적으로 재단했다. 반역사적 행태다. 나경원 같은 인물과 수구세력의 눈치를 보다가는 독립운동가를 선별 서훈하는 통탄할 사태가 계속될 것이다. 죽산 선생과 약산 선생 서훈은 역사적폐 청산 차원에서 바라봐야 한다.

마땅히 서훈 받아야 할 인물에 대한 서훈을 회피하는 것은 독립운동을 폄훼 홀대하는 행위이고 독재정권의 행태를 계승하는 것밖에 안 된다. 오는 광복절에는 죽산 조봉암 선생과 김원봉 선생 서훈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바란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